러시아의 선제 공습→우크라이나의 반격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지원→장기전에 따른 피로의 축적→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재집권→꼬이는 중재 협상→우악스러운 종전 논의까지.
오는 24일로 만 4년, 햇수로 5년째에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의 시간표다.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최근 추산에 따르면 4년간 양측 사상자는 200만명에 육박한다. 러시아군 사상자는 총 120만명이다. 사망자는 32만5000명 가량으로 파악됐다. 우크라이나군은 사상자 60만명에 전사자 10만~14만명으로 추정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무력 충돌이다.
전쟁의 국경 밖에서도 충분히 비극이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나토가 흔들렸고, ‘세계의 경찰’ 역할을 자임하던 미국과 동맹이 시험대에 올랐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의 충격이 세계를 덮쳤고, 극우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이 득세할 토양이 마련됐다.
◇트럼프가 바꾼 전쟁=전쟁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역에 대한 러시아의 선제 공습으로 시작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조기에 장악하려고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조 바이든 정부 당시,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한 나토가 신속한 군사·재정 지원으로 우크라이나를 도왔다. 러시아의 초기 계획이 좌절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의 침공이 오히려 나토를 확장시켰다”고 평가했다.
2023년 6월 우크라이나가 대규모 반격을 시도했지만, 전선을 뚫기엔 역부족이었다. 전쟁은 소모전 양상으로 바뀌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나토의 피로감도 커졌다. 뉴욕타임스(NYT)는 “군사 균형보다 정치적 인내가 더 큰 변수”라고 분석했다. 미국 의회에선 추가 지원 예산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졌다. 유럽에선 에너지·물가 부담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최대 변곡점은 트럼프의 재집권이었다. 트럼프는 지난해 1월 취임한 직후부터 중재자로 나섰다. 노선은 분명했다. 미국의 비용 부담 축소, 그리고 (러시아보다) 우크라이나의 양보. 우크라이나로선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해 3월 트럼프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트럼프의 공개 면박으로 끝났다. 이후로도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의 희토류·광물 자원과 전후 재건 문제를 연계해 협상을 압박했다.
지난해 8월 유럽 주요국 지도자가 종전을 논의하기 위해 백악관을 찾았다. 하지만 트럼프가 러시아 측 요구를 상당 부분 대변하면서 종전 논의는 길을 찾지 못했다. 지난 4~5일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17~18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러시아·우크라이나 3자 회담이 열렸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전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혹한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을 포함해 후방 도심에 화력을 집중하면서 민간인 피해도 커지고 있다.
◇정치·경제·사회 ‘상흔’=전쟁은 나토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외형적으로는 무너지지 않았다. 핀란드·스웨덴이 새로 가입했고, 각국이 군비 확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나토의 성격은 질적으로 바뀌었다. 트럼프는 나토의 집단 방위를 ‘자동 의무’가 아닌 ‘조건부 약속’으로 재정의하려 한다. 나토 회원국 사이에선 ‘미국이 언제까지 관여할 것인가’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았다. FT는 “나토가 가치와 규범의 공동체에서 비용과 효율을 따지는 계약 관계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디언은 “전쟁은 나토를 유지시켰지만, 나토가 미국 정치에 얼마나 취약한지 노출시켰다”고 짚었다.
전쟁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4년 파병된 북한군은 여전히 8000~1만 명이 러시아 쿠르스크에 주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군 포로 2명의 송환 문제는 한국 외교 당국의 과제다.
경제에도 상흔을 남겼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분야는 에너지다. 러시아는 유럽의 최대 천연가스 공급국이었다. 하지만 전쟁 이후 국제 제재로 수출이 끊겼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수십 년에 걸쳐 구축한 유럽의 에너지 공급망이 단기간에 붕괴했다”고 분석했다. 유럽이 급히 천연가스 수입 확대, 재생에너지 투자 가속화 등 대응에 나섰지만, 에너지 비용 상승을 피할 수 없었다. 전기·난방비 상승은 가계는 물론 제조업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유럽 전반의 경제성장률 둔화로 이어졌다.
식량 시장에서 충격도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최대 밀·옥수수 수출국이다. 항구 봉쇄와 물류 차질로 수출이 막히자 2022~2023년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했다. 에너지·식량 충격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전쟁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물가 상승을 지속시킨 핵심 외생 변수”라고 지목했다.
전쟁을 바라보는 사회 분위기도 달라졌다. 난민 문제가 방아쇠를 당겼다. 전쟁 이후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인이 유럽으로 이동했다. 초기에는 인도적 연대와 수용 분위기가 강했다. 시간이 흐르며 주거·복지·교육 비용 부담이 쟁점으로 부상했다. 극우·포퓰리즘 세력이 존재감을 키우는 토대가 됐다. 이코노미스트는 “전쟁이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민주주의의 기반을 잠식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