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25도. 난방은 약해졌고 전기는 끊겼다. 사람들은 아파트 거실 한가운데 작은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청한다. 모자를 쓰고 두꺼운 외투를 입은 채 담요를 여러 겹 덮어도 새벽 공기는 매섭게 스며든다. 전쟁 4년째를 맞은 우크라이나 동부 ‘제2수도’ 하르키우의 겨울 풍경이다.
중앙일보는 현지 실상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12일 우크라이나인 교육 종사자 올레샤 코발추크(43)와 화상 인터뷰를 했다. 그는 전쟁 발발 직후 폴란드로 피신해 난민 생활을 하다 2023년 고국(하르키우)으로 돌아왔다. 인터뷰 도중 통신은 여러 차례 끊겼지만, 도시의 참상을 전하려는 그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단절된 화면 너머로도 전쟁이 남긴 상처와 분노는 고스란히 전해졌다.
" 겉으로 보면 사람들이 공습 사이렌에 무감각해진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익숙해질 수 없습니다. "
지난달 2일, 러시아가 쏜 이스칸데르 미사일 두 발이 한낮에 건물을 직격했다. 코발추크의 집에서 불과 800m 떨어진 곳이었다. 그는 “사이렌이 울릴 틈도 없었다. 폭발음이 들리고 나서야 상황을 알았다”며 “공격이 반복될수록 두려움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쌓인다”고 말했다. 특히 러시아의 S-300 미사일 폭격을 언급하면서 “40초면 도시에 도달한다. 길어야 2분”이라며 “실제로는 방공호로 갈 시간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고 회상했다.
올겨울 하르키우는 혹한과 에너지 시설 공습이 겹치며 일부 지역에서 하루 6~24시간 정전과 난방 중단이 이어지고 있다. 코발추크는 “전기는 불편의 문제지만 난방은 생존의 문제”라며 “난방이 끊기면 아파트가 금세 얼음처럼 차가워진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집 안에 텐트를 치고, 휴대용 가스버너로 작은 공간만이라도 데워 잠을 청한다. 키이우 등 다른 지역의 지하철 플랫폼에선 텐트를 치고 잠을 자는 이들의 모습도 카메라에 포착됐다.
드론 공격은 일상이 됐다. 주민들은 공습 시 창문과 외벽에서 떨어져 최소 두 개의 벽을 사이에 두는 ‘두 벽 규칙’을 따른다. 그는 “공격이 시작되면 복도나 욕실처럼 벽이 겹치는 공간으로 이동한다”며 “방공부대가 대응하고 있지만, 드론이 동시에 대량으로 들어오면 모두 막을 수는 없다”고 했다. 동시에 일부 지역에선 또 다른 ‘고육책’도 등장했다. 도심 주요 도로와 건물 상공에 어망(그물망)을 설치해 저공비행 드론의 충돌을 유도하거나 낙하 피해를 줄이려는 시도다.
코발추크가 가장 우려하는 건 아이들이다. 전쟁이 너무 오래 이어져 “많은 아이가 전쟁 전 삶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5~6시간씩 지하 방공호에서 수업하는 것이 더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일부 학생들은 오히려 일반 교실을 어색하게 느낀다고 한다. 그는 “아이들이 다른 현실을 모른다는 사실이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
교육 현장도 흔들리고 있다. 전쟁 초기 많은 교육 종사자가 해외로 떠났고, 상당수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코발추크는 “공립학교는 대부분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됐고, 사립학교도 수용 능력에 한계가 있다”며 “정부 지원도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현재 하르키우 2곳과 폴타바 1곳 등 총 3개 학교를 운영 중인 그 역시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생 수는 오히려 늘었지만, 교사 부족은 여전히 심각하다”고 한다.
군 병력 징집을 둘러싼 갈등도 크다. 코발추크는 최근 형법 위반 혐의(군 활동 방해)로 기소됐다. 그가 남성 5명을 허위 고용해 징집을 피하게 했다는 게 군 당국 주장이다. 하지만 코발추크는 “해당 인원들은 실제로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들”이라며 “정식 고용임에도 문제가 됐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돈으로 (기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은밀한 제안도 받았다. 부패가 나라를 좀먹고 있다”고 폭로했다.
종전 협상에 대해선 회의감이 컸다. 그는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잘못된 희망을 경험했다”며 “지금 가장 신뢰하는 것은 우크라이나군”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외교적 해결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전쟁의 끝을 바라는 마음과 현실에 대한 냉정함이 교차하는 대목이다.
인터뷰 말미, 코발추크는 자신의 터전을 이렇게 표현했다.
" 하르키우는 철근 콘크리트의 도시입니다. 끊임없는 포격 속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가고, 일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한 세대를 잃고 있습니다. 외부 지원 없이는 이 전쟁을 멈출 수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