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유, 그리고 첫사랑이 가슴에 남긴 온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명작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터’(2007년 개봉) 속 주인공 타카키는 초등학교 시절 짝꿍 아카리에게 이 말을 들은 순간부터 잊지 못할 첫사랑을 시작한다. 초속 5㎝는 실제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는 아니다. 하지만 아카리가 한 말은, 지구와 우주의 신비로운 과학적 사실에 심취해 있던 외로운 소년 타카키의 영혼을 흔들고 애니메이션을 본 관객들의 뇌리에도 남아 있다.
‘초속 5센티미터’가 20여년 만에 동명의 실사 영화(오쿠야마 요시유키 감독 작품)로 돌아온다. 국내 개봉은 25일. 신카이 마코토 작품 중 실사화한 첫 사례다. 앞서 개봉한 일본에선 160만 관객을 동원했다. 성인 타카키 역은 일본 인기 아이돌 출신 배우 마츠무라 호쿠토, 아카리 역은 가수이자 배우 타카하타 미츠키가 맡아 섬세한 감정 연기를 펼쳤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났다”며 영화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원작 ‘초속 5센티미터’는 잦은 전학으로 마음 둘 곳 없던 소년 타카키가 같은 처지인 아카리와 만나며 시작된다. 우정과 사랑을 쌓은 둘은 또다시 전학을 가며 헤어지게 되고, 어른이 된 둘은 같은 도쿄 하늘 아래서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흩날리는 벚꽃처럼 잡힐 듯 말듯 이어지지 못한다.
오쿠야마 요시유키의 실사 영화는 이런 원작의 아련한 정서를 유지하면서도, 어른이 된 타카키와 아카리의 비중을 늘리는 방식으로 각색했다. 러닝타임도 원작(62분)의 두 배인 122분이다. 원작이 아름다운 한 편의 시라면, 실사 영화는 소설처럼 이야기의 맥락과 감정에 대한 설명이 충실한 게 특징이다. 이야기의 흐름도 다르다. 어린시절 첫 만남부터 시작되는 원작과 달리, 실사 영화는 타카키의 무미 건조한 ‘도쿄 라이프’로 시작해 결론도 보다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실사 영화는 원작과 달리 어른이 된 둘이 지나간 시간을 수용하고 현실에서 서로를 떠나보내는 과정이 담겼다.
원작의 은유와 상징은 대부분 애니메이션 못지 않은 영상미로 차용됐다. 타카키와 아카리가 훗날 만날 약속 장소로 정한 벚나무, 둘 사이를 가르는 도쿄의 기차역, 날아가는 우주선, 눈송이와 벚꽃이 흩날리는 모습 등이 그런 사례다. 어린 아카리가 철길 너머에서 사랑스럽게 우산을 들어올리며 “내년에도 함께 벚꽃을 본다면 좋겠다”고 외치는 장면은 애니메이션에서 튀어나온 듯하다. 시대에 맞춰 흐릿해지는 영상의 질감은 1990년~2000년대 초반의 향수를 자극한다.
애니메이션의 주제가인 야마자키 마사요시의 ‘원 모어 타임, 원 모어 찬스(One more time, One more chance)’도 리마스터 버전으로 삽입됐다. 다만, 실사 영화에선 요네즈 켄시가 부른 신곡 ‘1991’이 주제가다. 주인공들이 처음 만난 해(1991년)를 제목으로 한 이 OST는 과거의 기억을 안고 현재를 살아가는 어른의 시점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