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9차 당대회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중심의 권력 지형 구축을 본격화했다. 김정은의 집권 초기 안정을 견인했던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비롯한 핵심 원로들을 당 중앙위원회 명단에서 대거 제외하면서다. 김정은이 이번 당대회를 계기로 선대 지도자와 차별화된 업적을 기반으로 정치적인 ‘홀로서기’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노동신문은 23일 전날 열린 9차 당대회 4일 차 회의에서 138명의 중앙위원과 111명의 후보위원을 전원 찬성으로 선출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에서 고위직 발탁의 필수 관문으로 여겨지는 중앙위원 명단은 5년 전 8차 당대회 명단과 비교해 73명이 바뀌었다. 임기 중 교체된 인원까지 포함하면 전체의 절반 이상이 물갈이된 셈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빨치산 2세대의 대표주자 격인 최용해의 탈락이다. 빨치산 출신인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인 최용해는 2019년부터 7년째 북한 공식 의전 서열 2위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지내며 승승장구해 왔다.
그는 당의 핵심 의사결졍기구인 정치국 상무위원도 당연직으로 겸임해왔지만, 이번에는 당중앙위 후보위원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 때문에 9차 당대회 직후 새롭게 구성할 것으로 보이는 최고인민회의 15기에선 올해 76세로 고령인 최용해의 퇴진이 예상된다.
군부 권력의 중심축도 이동했다. 김정은 체제에서 군 서열 1·2위를 다투던 박정천 당비서와 이병철 당 군수정책담당 총고문이 나란히 중앙위원에서 빠지면서다. 군부의 대표 원로이자 북한군 원수 칭호를 받은 두 사람은 그간 핵·미사일 등 신무기 개발을 진두지휘해 왔다. 특히 포병사령관 출신인 박정천은 김정은의 후계자 시절 군사 분야 가정교사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대남통’으로 꼽히는 김영철 당 고문과 이선권 당 10국(전 통일전선부) 부장도 이번에 중앙위원과 후보위원에서 모두 제외됐다. 오수용 당 경제정책 고문과 북핵 개발의 주역인 홍승무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도 명단에서 사라졌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최용해를 일선에서 배제한 건 김정은이 더는 선대의 상징성에 의존하지 않고 홀로서기에 나섰음을 선포하는 의미”라며 “향후 당 운영의 주도권 역시 조용원 당 조직비서 등 김정은이 직접 발탁한 인사를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김정은 시기 외교사령탑으로 발탁된 최선희 외무상은 중앙위원으로 승격했고 무기개발 관련 업무를 도맡고 있는 조춘룡 당 군수공업부장, 주창일 당 선전선동부 부장, 한광상 당 경공업부 부장 등이 중앙위원 명단에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통일부에 따르면 이번 인사에서 당 중앙위 후보위원을 거치지 않고 중앙위원 138명 내에 직행한 인사는 54명에 달한다. 이와 함께 후보위원에 새로 진입한 85명 역시 경제·과학기술·교육 분야의 젊은 기술 관료들로 채워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