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 몸 전체가 책을 통과하는 것이다. (…) 텍스트를 통과하기 전의 내가 있고 통과한 후의 내가 있다. (…) 내가 가장 어려운 책은 나의 경험과 겹치면서 오래도록 쓰라린 책이다. 면역력이 생기지 않는 책이 좋은 책이다. 그리고 그것이 ‘고전’이다. -노영민 외 『스무 살의 독서 노트』 중에서.
내가 읽은 것이 나다. 특히 스무 살의 독서는 말랑한 내 몸을 통과해 평생의 나를 결정한다. 정치인·교육자·사회활동가 등 76학번 운동권 출신 인사 20명이 스무살에 읽은 인생책을 꼽았다. 70, 80년대 대학가의 필독서들로,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참조할 만한 리스트다.
위 문장은 여성학자 정희진의 것으로, 80년대 공장에 위장 취업했던 이현숙 환경운동가의 글에 나온다. 이씨는 『전태일 평전』을 꼽았다. 훗날 정식 출판되면서 제목과 저자(조영래)를 찾았지만, 당시에는 몰래 돌려 읽어 너덜너덜해진 종이 뭉치에 제목도 지은이도 없는 글이었다. 무엇보다 “모든 인간이 서로서로 ‘전체의 일부’이며 ‘너는 또다른 나’라는 (전태일의) 비범한 인간관”이 놀라웠다. 노동자를 의식화 대상 정도로 여겼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요즘은 운동권 혹은 386이 기득권이나 불명예의 대명사쯤으로 폄훼되기도 하지만 이씨는 여전히 ‘전태일스러움’에서 ‘운동권스러움’을 찾는다. “불의한 것에 아니라고 목소리를 낼 줄 아는 근성, 삶에 대한 탐구심으로 새로운 상황을 열어가는 태도 같은 것”이다.
그 외에도 이런 문장과 책들이 나온다. “근대의 자유는 개인의 해방을 의미했으나 그것은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제도로 진화하였다.” “이성은 신을 몰아냈으나 인간 자신을 신의 자리에 앉히지 않았는가.”(차하순 『서양사 총론』) “인간 사회는 일반적으로 사상의 자유, 또는 달리 말해 새로운 생각에 반대해왔다.”(존 B. 베리 『사상의 자유의 역사』) “시간이 없어 교회에 못 나가고, 결국 우리는 가난하기 때문에 지옥으로밖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죠.”(유동우 『어느 돌멩이의 외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