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공단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흡연과 폐암·후두암 사이의 역학적 관련성은 인정되지만, 개별 환자에 대해 법적 인과관계를 직접 입증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건강보험 급여 지출은 법에 따른 건보공단의 의무적 지출이라는 이유로 담배회사에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법적 책임의 범위를 다룬 것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작지 않은 파장을 낳고 있다.
법원, 흡연과 폐암 등 관련성 인정
건보공단 패소 판결, 오해 없어야
흡연의 사회·경제적 비용 줄이길
임상의사이자 대한금연학회 회장으로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이번 판결이 흡연자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칫 “흡연이 폐암이나 후두암의 직접 원인은 아니다”는 식의 오해로 이어지거나, 금연을 미뤄도 된다고 안도해서는 안 된다.
의과학적으로 흡연은 폐암과 후두암을 포함한 수많은 질병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란 것은 이미 확립된 사실이다. 물론 암은 단일 원인으로 발생하지 않지만, 폐암과 후두암의 가장 중요한 발생 원인은 흡연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암연구소(IARC) 보고와 수많은 연구에서 흡연이 폐암 발생 위험을 비흡연자보다 15~30배까지 높이며, 후두암·구강암·식도암·췌장암 등 다양한 암의 주요 원인임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흡연은 암뿐 아니라 심근경색·뇌졸중·만성폐쇄성폐질환·당뇨합병증 등 수많은 만성질환의 발생과 악화를 초래한다. 이는 단일 연구가 아니라 수십 년간 축적된 여러 인구기반 코호트 연구와 메타분석을 통해 확인된 의과학적 연구 결과다. 더 중요한 사실은 금연의 효과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금연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심혈관계 위험은 빠르게 감소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폐암과 여러 암의 발생 위험도 지속해서 낮아진다. 즉, 금연은 이러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번 판결과 별개로 우리가 분명히 직시해야 할 현실은 흡연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이 연간 13조원 이상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손실이 누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많은 국가에서 흡연 피해를 개인 책임으로만 돌리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주정부들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공공의료보험(메디케이드) 재정 악화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고, 그 결과가 마스터 합의(MSA)다. 이 합의에 따라 담배회사가 2000억 달러(약 291조원)에 이르는 거액의 배상을 지급하고, 담배 광고와 마케팅을 제한하는 제도적 틀이 만들어졌다.
캐나다에서도 주정부와 흡연 피해자들이 담배의 위험성과 중독성을 은폐하고 마케팅해 온 사실을 지적하며 담배회사들에 소송을 제기했다. 담배회사가 30조원 이상의 대규모 배상액을 지급하는 합의안이 법원에서 승인됐다. 이렇게 외국에서는 흡연으로 인한 사회적 피해에 대해 담배회사가 보상과 책임을 지도록 했다. 흡연 피해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의 부담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한국도 흡연으로 인한 질병 치료비는 대부분 건강보험에서 지출되고, 이는 결국 건강보험료를 내는 국민 모두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따라서 이번 판결을 계기로 금연 정책이 퇴보하면 안 된다. 오히려 국가는 국민의 건강 보호를 위해 흡연자 금연 지원과 담배 규제 정책을 더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담배회사는 법원 판결과 별개로 흡연으로 인한 피해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고위험 상품을 판매해 막대한 이익을 거둬온 담배회사는 흡연자를 위한 금연 지원 재원을 마련하고, 흡연 관련 질병 부담을 나누는 것이 응당한 사회적 책임이다.
새해가 되면 많은 흡연자가 새로운 각오로 금연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하지만, 대부분 작심삼일에 그치거나 1주일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설 명절에 모처럼 가족들과의 만남을 계기로 금연을 다시 시작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가족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담배를 끊겠다는 결심과 실천일 것이다. 흡연자들에게 “법원 판결이 어떻게 나왔든 매일 흡연으로 인해 발암물질이 축적되는 당신의 몸은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다. 금연은 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