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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만 85건…산불 잘 나는 한반도 됐다

중앙일보

2026.02.23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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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검세리 한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번지고 있다. [뉴스1]
“겁이 나서 후다닥 나온다꼬 보따리도 몬 쌌지. 몸땡이만 나왔어….”

23일 오후 1시쯤 경남 함양군 한 체육관에서 만난 소모(88) 할머니 얘기다. 다리가 불편한 소 할머니 옆엔 지팡이를 두 개씩 짚고 다니는 80·90대 할머니 3명도 있었다. 이들 할머니는 구호 텐트 안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모두 산불로 대피한 송전마을 주민들이다. 송전 마을은 최초 발화 지점인 함양 마천면 창원리 한 야산에서 2㎞ 가량 떨어져 있다. 석연상(71) 송전마을 이장은 “대부분 70~90대 어르신들이어서 군 직원 등이 부축해 대피했다”며 “불길이 급경사를 타고 급속도로 확산했다”고 말했다. 21일 발생한 이 산불로 인근 5개 마을 주민 164명이 체육관 등으로 대피했다.

함양산불은 국가소방동원령까지 내린 산림당국이 헬기 등을 동원해 밤낮없는 진화 작업을 벌였지만, 불길은 쉽게 안 잡혔다. 장기간 비가 안 와 건조한 날씨에 강풍·급경사, 두꺼운 낙엽층이 연료 역할을 해서다. 다행히 강풍이 한풀 꺾이고 대규모 진화작업이 계속되면서 이날 오후 5시쯤 이틀만에 불길이 잡혔다. 인명 피해는 없고, 비닐하우스 한 동, 농막 한 동 불탄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오후 4시 10분쯤 경남 밀양에서도 산불이 발생, 소방청은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동해 산림당국과 함께 진화에 나섰다. 앞서 강원 고성, 충북 단양 등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이달 들어 전국에서 85건의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엔 43건이 발생했고, 2024년엔 11건이었다. 이처럼 산불이 2월에 많이 늘어난 건 한반도가 점점 산불이 발화·확산하기 용이한 기후로 변화해서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앙일보가 기상청의 1974~2025년 기상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월 기준 강원 속초의 경우 평균 상대습도가 50% 미만이었던 해는 2000~2025년 중 총 12개년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1974~1999년엔 4개년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건조한 2월’이 3배로 늘어난 셈이다. 방재학자들은 상대습도가 50% 미만일 경우 산불이 발생하기 쉽고 연소가 빠르다고 본다.

강수량이 적은 해도 더 잦다. 2월 기준 속초의 강수량이 10㎜ 미만인 해는 1974~1999년엔 3개년이었는데 2000~2025년 총 7개년으로 2배 이상 늘었다. 날씨는 한층 따뜻해졌다. 1974~1999년 속초의 2월 기온은 평균 1도였지만, 2000~2025년은 평균 1.9도로 1도 가까이 올랐다. 함양의 기후도 비슷하다. 인접한 경남 산청의 기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산불 위험 3개 요소(낮은 상대습도, 적은 강수량, 높은 기온)가 2개 이상 중첩돼 나타난 해는 1974~1999년 1회에서 2000~2025년 7회로 늘었다. 이 기간 평균 상대습도는 62→ 53.5%로 더 건조해졌고, 평균 기온은 1.5도→ 2.5도로 1도 올랐다.

김주원 기자
전문가들은 이런 기후 변화로 인해 한번 산불이 나면 피해 면적이 커지는 ‘대형화’가 진행 중이라고 봤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0년대 산불 피해면적은 연평균 857㏊(헥타르)였지만 2020년대 들어 2만3118㏊로 약 27배 커졌다.

민승기 포스텍 환경공학부 교수는 “진짜 원인은 기온·습도·바람이 만들어 낸 기후 조건”이라며 “대기 중 탄소 농도 자체를 줄이는 탄소 포집·저장, 산림 복원 등이 (산불 방지에) 필수”라고 말했다.





안대훈.김민주.박진호.허정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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