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23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했다. 양국 수교 67년 만이다. 양국은 2004년 룰라 대통령 재임 때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브라질 국빈방문에 맞춰 포괄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었는데, 이번에 한 단계 더 격을 높인 것이다.
정상회담 뒤 공동언론발표에서 이 대통령은 “한국과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MERCOSUR) 간 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을 조속히 재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며 “룰라 대통령도 긴요한 과제라는 점에 깊이 공감했다”고 전했다. 메르코수르는 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우루과이 등이 속한 남미 최대 경제 공동체다. 정부는 한-메르코수르 무역협정을 추진해 왔지만, 상품시장 개방 등 쟁점에서 합의점을 못 찾고 있다.
이 대통령은 또 “브라질 수송기 제조에 우리 부품 기업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항공 분야에서도 양국 간 공급망 협력이 진행 중”이라며 “차세대 민항기 공동개발 등 한 단계 높은 수준의 협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12월 브라질 알칸타라 우주센터에서 한국 최초 상업 우주 발사체 발사를 시도했던 일도 언급했다.
룰라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브라질산 소고기 수출을 위한 위생 검역 요건이 조속히 마무리된다면 한국 소비자들에게도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충분히 설명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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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꼴 룰라 껴안은 대통령
…희토류·우주동맹 손 잡았다
브라질은 소고기 수출에서 세계 1·2위를 다투는 나라지만, 한국은 구제역 등 질병을 이유로 브라질산 소고기 수입을 제한하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브라질 전략적 동반자 관계 이행을 위한 4개년 행동계획도 채택됐다. 양국은 또 중소기업·보건·농업 등 10개 분야에서 양해각서(MOU) 및 협약을 맺었다.
MOU엔 핵심 광물 분야 교류·협력을 촉진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룰라 대통령은 확대 정상회담에서 “브라질은 희토류 매장량 세계 최대이며, 니켈도 상당히 많이 매장돼 있다”며 “핵심 광물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 분야 규제 협력 MOU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최근 브라질에서 인기를 끄는 K화장품이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날 이 대통령은 룰라 대통령을 뜨거운 포옹으로 맞이했다. 이 대통령은 오전 10시30분부터 청와대 본관 앞에 미리 나와 룰라 대통령을 기다렸다. 김혜경 여사는 브라질 국기 상징색을 반영해 초록색 고름을 단 파란색 저고리와 옅은 노란색 치마를 입고 함께 섰다. 룰라 대통령이 탄 검은색 차량은 취타대와 전통 의장대의 호위를 받으며 청와대로 진입했다. 룰라 대통령이 차에서 내리자 이 대통령은 양팔을 벌려 환영의 뜻을 보였고, 두 정상은 5초 남짓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포옹하는 인사를 나눴다.
두 정상은 회담장에서도 오른손을 높이 들어 손뼉 소리가 들리게 맞잡는 등 우의를 과시했다. 이 대통령은 회담에 앞서 자신의 얼굴이 표지에 그려진 책에 ‘사랑하고 존경합니다’라고 적어 선물했다. 룰라 대통령이 방명록에 서명하자, 이 대통령은 손뼉을 치며 “예술”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정상회담은 예정보다 50분 길게 진행됐으며, 두 정상은 언론발표를 마친 뒤 재차 포옹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X(옛 트위터)에 한글과 포르투갈어로 나란히 올린 환영 메시지에서 룰라 대통령을 “나의 영원한 동지”라고 부르며 “삶과 정치에서 한발 앞서가신 대통령님의 길이 나의 인생 역정과 너무도 닮았다”고 적었다. 이 대통령과 룰라 대통령은 소년공 출신으로 각각 인권변호사와 노동운동가를 거쳐 대통령이 됐다. 룰라 대통령은 12세에 초등학교를 그만두고 염색공장에서 일했고, 17세엔 금속공장에서 왼손 새끼손가락이 잘려 나가는 사고를 당했다. 이 대통령 역시 중학교 진학 대신 경기도 성남에서 소년공으로 일하다가 프레스기에 눌리는 사고로 왼팔을 다쳤다.
검찰 수사 위기를 겪은 점도 비슷하다. 룰라 대통령은 첫 임기(2003~2010년·재선) 이후 ‘세차 작전(Lava Jato)’으로 알려진 브라질 연방 검사팀의 반부패 수사선상에 오르며 2018년 대선 직전 수감돼 대선 출마가 좌절됐다. 하지만 브라질 연방 대법원이 2021년 선고 무효를 결정했고, 이듬해 대선에 출마해 3선에 성공했다. 이 대통령 역시 대선 전까지 대장동·공직선거법·쌍방울 사건 등 검찰의 전방위 수사를 받았다. 두 정상의 전임자인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과 윤석열 전 대통령은 각각 쿠데타 모의로 징역 27년, 내란 수괴 혐의 등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