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독일 극우 세력이 미국인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1953∼2019)을 끌어다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옹호하고 있다. 미성년자 성착취를 비롯한 엡스타인 사건의 배경에 거대한 유대인 네트워크가 있다는 음모론에 기반한 주장이다.
23일(현지시간) 일간 타게스슈피겔 등에 따르면 독일대안당(AfD) 소속 브란덴부르크주 슈베트 시의원 페기 린데만은 최근 인스타그램에 이같은 내용을 담은 동영상을 올렸다.
이 동영상에는 "오스트리아 출신 한 화가가 '프로파간다'에서 엘리트들이 우리 아이들 피를 마신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가 악인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문구가 적혀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는 정치를 시작하기 전 빈의 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하려다가 실패한 나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1889∼1945)를 가리킨다.
'엘리트' 옆에는 음료수 팩 모양 이모티콘을 달았다. 이 이모티콘은 영어로 주스(juice)와 유대인(Jews)의 발음이 비슷하다고 해서 유대인을 가리키는 암호처럼 쓰인다. 유대인 엘리트 집단이 미성년자 상대 성범죄를 저질렀으니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절대악은 아니었다는 논리다.
유대인들이 기독교 어린이의 피를 노려 납치·살해한다는 서사는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럽의 오랜 반유대주의 음모론이다. 나치도 유대인을 흡혈귀에 빗대며 혐오를 부추겼다. 동영상에는 '유대인들은 우리의 불행이다'라는 제목의 나치 시절 만화도 포함돼 있다.
동영상은 극우 인플루언서 데니제 케틀러가 만들어 퍼뜨린 걸로 알려졌다. 린데만 의원은 엡스타인 관련 영상을 수십 개 올리다가 실수했다며 사과하고 문제의 동영상을 삭제했다. AfD는 극우 성향으로 분류돼 독일 정보기관의 합법적 감시를 받고 있지만 반유대주의와 공식적으로는 선을 긋고 있다.
브란덴부르크주 반유대주의 담당관 안드레아스 뷔트너는 케틀러와 린데만을 국민선동 혐의로 형사 고발하고 린데만에게 의원직 사퇴를 요구했다. 이 지역 녹색당 대변인 파트리크 타일리히만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게시물을 올리려면 의도적 손가락 움직임이 적어도 세 번 필요하다"며 실수일 리 없다고 주장했다.
엡스타인이 전세계 유력인사들에게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과 성관계를 연결해줬다는 사건의 전말은 최근 미국 법무부의 수사 관련 자료 공개로 상당 부분 드러나고 있다. 엡스타인의 부모는 각각 러시아와 리투아니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비밀요원이었다는 등의 음모론은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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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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