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두고 옴짝달싹 못하는 ‘데드락(deadlock·교착상태)’에 빠졌다. 장동혁 대표를 비롯한 강경파에 맞서 오세훈 서울시장과 친한동훈계가 쇄신을 요구하고 있지만 상당수 중진은 관망하면서 무기력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6·3 지방선거를 100일 앞둔 23일 국민의힘은 의원총회를 열었지만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장 대표 거취, 당 노선 전환 등 민감한 주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건드리지도 못하고 끝났다. “절윤도, 절장도 없었다”는 국민의힘 관계자의 푸념이 나올 정도로 ‘맹탕’ 의원총회였다.
의총 전까지만 해도 국민의힘에선 전운이 감돌았다. 장 대표가 지난 20일 윤 전 대통령의 무기징역 선고 이후 “계엄은 내란이 아니다”며 절윤은커녕 강성 지지층 결집에 나선 탓에 당 안팎이 들끓은 뒤 열린 첫 의총이었던 까닭이다. 지지율도 곤두박질친 상황이었다. 리얼미터가 지난 19~20일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조사해 23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지난 주보다 3.5%포인트 하락한 32.6%에 그쳤다. 지난해 8월 장 대표 취임 이후 최저치였다. 그래서 장 대표의 사퇴와 노선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분출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었고, 그동안 조용하던 회색지대 의원들이 들고 일어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상식적인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23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약 3시간 동안 비공개 의총이 진행됐지만 결과물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이 벼랑 끝에 섰지만 의총은 비교적 고요했고 “내란 수괴 윤석열과 절연하지 않으면 우리 당은 참패한다”(조경태 의원) 등 개혁 성향 의원 5~6명의 성토가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이날 국민의힘 의원 상당수는 방관하며 침묵했다. 장 대표를 향한 공개 사퇴 요구도 없었다. 장외에 있는 오 시장이 의총 전 CBS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당의 공식 노선이 이 길이 아니라는 것이 충분히 논의가 돼서 합의를 이루면 좋겠다”고 외쳤지만 허사였다. 중진 의원은 “장 대표가 퇴진하더라도 대안이 없고, 물밑으로 변화를 요구해도 바뀌질 않으니 의욕도 떨어진다”고 했다.
지도부와 강경파가 애초 이 그림을 노린 측면도 있다. 의총 3시간 중 초반 1시간 20분을 김수민 브랜드전략 태스크포스(TF) 단장과 TF 소속 청년들이 그간의 당명 개정 과정 등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기 때문이다. 당명 개정 과정 설명이 끝난 뒤에는 대구·경북 행정 통합 찬반을 두고 40분 가까이 논쟁이 벌어졌다. 지도부와 현 노선을 비토할 기회인 자유토론은 마지막 1시간을 남기고서야 이뤄졌다. 중간중간 조은희 의원 등이 “(당명 개정 상황을) 짧게 설명해달라”고 요청하거나 조경태 의원 등이 지도부를 비판했지만 의총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사회자가 “안건에 해당되는 얘기만 하자”고 제지하는 등 애초 불편한 얘기를 할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이다.
친한계 한지아 의원은 의총 뒤 “순서 자체를 이렇게 짠 게 의도적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의총이 끝날 때 남은 의원은 30여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조은희 의원은 페이스북에 “입틀막 의원총회에 다름없다”고 썼다.
그렇다고 쇄신파의 의지가 컸던 것도 아니다. 충돌을 불사하고 릴레이 발언을 이어갔어야 했지만, 그런 의지는 찾기 힘들었다. 일부 중진은 “당내 갈등을 부추기기보다는 대여 투쟁을 더 강하게 해야 한다”(나경원 의원)거나 “전쟁 중에 장수를 바꿀 수 없다”(윤상현 의원)는 현상 유지에 힘을 실었다.
그렇게 지지부진한 의총이 끝나갈 때 장 대표는 연단에 올라 ‘윤 전 대통령 무기징역 형량에 비판적 국민의힘 지지층이 75%’인 당 내부 여론조사 등을 내세우며 ‘강성 지지층 결집’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장 대표는 “50%대로 낮은 지방선거 투표율을 고려하면 강한 지지 기반을 확고하게 구축해야 한다”며 “(20일 자신의) 입장문을 1~2번이라도 더 읽어본 사람이 있느냐”며 외려 의원들을 비판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고 한다.
분수령이 될 것 같던 의총이 허무하게 끝나면서 국민의힘에는 무기력감이 퍼지고 있다. 중진 의원은 “이제는 백약이 무효”라고 했고,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방선거 출마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서 한숨만 나온다”고 했다.
국민의힘이 과거와 결별하지도 못하고 내부 갈등 속에서 문제 해결력도 잃어가자 보수 진영의 데드락을 우려하는 진단도 나온다. 이선우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뒤에는 중진을 중심으로 바른정당을 창당하는 등 보수를 되살리기 위한 움직임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움직임이 아예 실종됐다”며 “유력 대권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보수 진영의 침체는 장기 지속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