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새 한국의 자동차 수출액이 가장 많이 늘어난 국가는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이다. 지난해 한국에서 키르기스스탄으로 향한 자동차는 총 32억 달러(약 4조6000억원)어치로, 전년대비 105.4%(16억4000만 달러) 급증했다. 전체 자동차 수출 증가폭(11억9000만 달러)보다 크다. 한국은 미국·캐나다·호주에 이어 자동차를 세계에 가장 많이 수출한 국가 4위였다.
주역은 ‘신차’가 아닌 ‘중고차’였다. 키르기스스탄으로 수출한 신차는 200여대에 불과했지만, 중고차 수출은 13만여대로 전체 수출의 99%를 차지했다. 관세 여파로 대미 자동차 수출이 크게 줄었지만, 중고차가 이를 상쇄한 셈이다. 특히 글로벌 중고차 시장 트렌드가 값싼 노후화 차량에서 친환경차로 고급화하면서 한국산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23일 한국무역협회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자동차 수출액은 719억7000만 달러로, 전년보다 1.7% 늘어났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자동차에 품목별 관세가 부과되면서 미국 시장에서만 수출액이 45억9100만 달러(-13.2%) 증발했음에도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을 기록한 것이다.
세부 내역을 들여다보면 신차와 중고차 수출 실적이 뚜렷하게 갈린다. 지난해 신차 수출은 오히려 4% 줄어든 631억1000만 달러를 기록한 반면, 중고차 수출은 75% 급증한 88억6000만 달러였다. 전체 자동차 수출에서 중고차가 차지하는 비중도 2024년 7.2%에서 지난해 12.3%로 두 자릿수로 올라섰다. 중고차가 아니었다면 최대 기록 경신도 어려웠던 셈이다.
중고차 수요는 ‘경제가 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신차를 살 만한 구매력은 부족한’ 신흥국을 중심으로 꾸준히 커지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독일·일본·미국·중국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있는 국가들이 대부분 수출한다. 여기에 시리아 내전 종식,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등 ‘전쟁 특수’도 중고차 수요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과거엔 일본산 중고차의 위상이 강했지만, 최근 현대차·기아 등 한국 완성차의 평가가 높아지면서 한국산 중고차 수요도 덩달아 늘었다는 평가다. 한국의 주요 중고차 수출 대상국은 키르기스스탄·카자흐스탄·리비아·아랍에미리트(UAE) 등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의 정준하 연구원은 “(한국산 중고차를 주로 수입하는) 리비아는 구매력이 낮은 튀니지·알제리 등 북아프리카 재수출 거점으로, 키르기스스탄은 러시아 재수출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중고차 수출 산업은 이미 생산된 차량을 사들여 재판매하는 유통업에 가까운 구조다 보니, 신차와 달리 자체적인 생산유발 효과는 미미하다. 하지만 한국산 중고차가 많이 팔린 국가로 관련 부품 기업이 함께 진출하는 등 ‘애프터 마켓(부품·서비스 시장)’ 생태계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국내 중고차 수출 시장이 대부분 영세업체로 구성된 만큼, 중소기업 수출 성장에도 기여한다는 평가다. 실제 지난해 중소기업 1위 수출 품목은 K뷰티를 제치고 자동차가 차지했다.
중고차 시장에서도 친환경차 등 고부가가치 차량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글로벌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한국의 친환경 중고차 수출도 200% 넘게 급증했다. 정 연구원은 “신흥국에서도 구매력이 높아지고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친환경차 수요도 확대하는 흐름”이라며 “글로벌 수요에 맞춰 중고차 수출 전용 복합단지 구축 등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