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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에 막판 되치기…“국민연금은 정부 아냐” 승부수 적중

중앙일보

2026.02.23 19:11 2026.02.23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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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 국제투자분쟁과장이 24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의 국제투자분쟁(ISDS) 취소판결 선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에 약 1600억원(현재 기준)을 지급하라던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판정을 뒤집을 수 있던 배경엔 ‘국민연금공단 의결을 정부적 행위로 볼 수 없다’는 승부수가 있었다. 엘리엇은 10년 전 박영수 국정농단 특별검사의 수사 결과로 집요하게 반대 논리를 폈으나, 정부가 판정승을 거뒀다.




영국 법원 “국민연금, 국가기관 아냐”

조아라 법무부 국제투자분쟁과장은 24일 브리핑을 열고 “어제 저녁 7시30분쯤 영국 1심 법원이 ‘국민연금공단은 국가기관이 아니다’라는 정부 주장 받아들여 국민연금공단이 국가기관임을 전제로 손해배상을 명령한 PCA 중재판정을 일부 취소하고 인과 관계 및 손해에 관해 다시 판단하도록 사건을 중재 절차로 환송했다”고 전했다.

삼성물산 주주였던 엘리엇은 2015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에 불리함에도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이 찬성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며 2018년 국제투자분쟁(ISDS)을 제기했다. PCA는 우리 정부가 엘리엇에 배상원금과 지연 이자 등 총 1억782만 달러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2023년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후 취소소송을 제기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즉각 취소 소송을 냈다.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PCA가 관할권 없는 사건을 심리했다는 논리를 폈다. 한미 FTA 제11.1조에 PCA는 ‘당사국이 채택하거나 유지하는 조치’에 문제가 있어야 ISDS를 제기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정부는 국민연금공단을 당사국인 대한민국으로 볼 수 없을뿐더러, 주주 의결 행위를 정부의 공권력·행정력 행사로 보기는 더욱 어렵다는 논리였다.

한동훈 장관은 취소 소송 제기 직후 브리핑에서 “만약 이런 지분권 행사마저 ISDS 대상이 되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모든 국가의 국부펀드나 연기금 펀드 지분권 행사도 걸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수 주주는 자신의 의결권 행사를 이유로 다른 소수 주주에게 어떤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공인된 상법상의 대원칙이자 상식”이라고 덧붙였다.



취소 소송 국면에서 엘리엇은 2016년 출범한 박영수 국정농단 특검팀의 수사 결과를 집요하게 반대 논리로 제시했다. 특검팀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지시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이 합병 찬성을 강행했다고 직권남용죄로 기소했다. 둘 다 2022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이 확정됐다.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 의결하도록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던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 둘 다 2022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중앙일보 DB

엘리엇은 대법원 판결로 국민연금공단 의결권 행사가 사실상 국가의 공권력, 행정력 작용이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유무죄와 별개로 국민연금공단은 국가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ISDS 자체를 제기할 수 없고, PCA에 관할권도 없다는 ‘절차적 문제’를 파고들었다. 우리 정부와 엘리엇 ISDS 중재지로 정해진 영국의 1심 법원은 애초 FTA 11.1조가 ISDS 제기 조건을 규정한 ‘관문 조항’이라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항소했고 영국 고등법원(High Court)은 관문 조항이 맞다며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사건을 돌려받은 영국 1심 법원은 FTA 11.1조를 근거로 국민연금공단을 당사국, 곧 국가기관으로 볼 수 있는지 심리한 결과 ▶공단이 정부와 별개의 법인격을 보유했고 ▶국민연금기금 운용이 치안, 국방 등 국가 핵심 기능에 해당하지는 않고 ▶국민연금공단 일상적 의사 결정이 정부에 완전 종속되지는 않는 점 등을 근거로 정부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다만, 영국 법원은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공단 의결권 행사에 개입한 부분은 국가기관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따라서 ISDS 제기 자체는 정당했고, PCA가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의 개입과 엘리엇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근거로 중재판정을 다시 내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조 과장은 “환송 재판 대응에 만전을 기하고 국익을 최우선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한동훈 “민주당, 이제 와 숟가락 얹기”

조 과장은 엘리엇과 법적 분쟁이 “다윗과 골리앗 싸움”이라 평가했다. 제한된 예산으로 다투느라 변호사 선임 등 소송 비용이 엘리엇과 6배 차이가 났다고 한다. 영국 법원에서 다툰 사건인데, 영국 왕실이 임명해 킹스 카운슬(King’s Counsel) 또는 퀸스 카운슬(Queen’s Counsel)로 불리는 칙선 변호사를 엘리엇은 3명, 정부는 1명 선임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인용률이 3%에 불과한 영국 법원의 중재판정 취소 결정을 받아낸 점을 두고 조 과장은 “기존 중재판정이 확정됐다면 1800조원 상당 기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공단의 투자활동이 정부 조치로 간주되며 잠재적 ISDS 대상이 될 수 있었다”며 “투자 활동 위축,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어 분쟁에 사명감으로 임했다”고 밝혔다.

취소 소송 제기를 주도했던 한동훈 전 장관은 전날 페이스북에 “최선을 다한 공직자, 관계자들께 감사드린다”며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과거 ‘취소소송을 제기한 한동훈에게 배임죄를 물어야 한다’ ‘한동훈이 엘리엇에 이자 대신 물어줄 거냐’며 집요하게 방해했는데, 이제 와서 숟가락 얹는 대신 반성과 성찰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성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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