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의 현대성은 참신한 주제를 넘어 이를 구현하는 기교적 구성과 전개에 있다. 이번 달에는 새로운 보법을 찾으려는 시도와 소재 활용의 묘미에 주목하며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장원 하여진의 ‘뱅쇼’는 와인을 끓이는 과정에 이별의 상처를 치유하는 서사를 탄탄하게 결합했다. 재료를 준비하며 기억을 소환하고, 액체의 증발과 함박눈의 대비를 거쳐 “증오”라는 처방으로 감정의 정화를 이루는 구성이 돋보인다. 미각과 시각을 결합한 감각적 묘사와 비유가 탁월하다. 음보의 불안정함이 일부 보이지만, 사랑의 반대급부를 통한 치유라는 독특한 시각은 매우 현대적이다.
차상 백인우의 ‘짧아지는 봄날을 읽는다’는 계절의 이행을 ‘독서’라는 행위로 치환한 감각이 빛난다. 겨울을 꼬집어 봄의 살갗을 얻는 도입부터 산나물을 페이지로 읽어내는 비유가 정밀하다. 봄의 풍경을 유기적 상징체계로 엮어내며 고속철도의 속도감과 개나리의 연약함을 대비시킨 점이 주목된다. 차하 백재순의 ‘돌돌돌’은 모난 돌이 조약돌이 되는 과정을 인생의 섭리에 빗댄 수작이다. 의성어 ‘돌돌돌’을 활용해 경쾌한 리듬을 살렸고, 시련의 흔적인 상처를 “윤”으로 변주한 따뜻한 시각이 인상적이다. 다만, “어쩌면 산다는 건”과 같은 다소 익숙한 전개 방식은 아쉽다. 자신만의 고유한 문법을 찾아가는 그 정진의 길을 응원한다.
심사위원 이송희(대표집필)·이태순
초대시조
꽃을 이끌고 가야지 임영숙
한 그루 나무에서 만 그루의 어둠이 살아
벌레 먹은 나뭇잎 그 사이로 별이 떴다
가을은 붉은 내력을 벗은
불꽃들의 집합체
맺혀있는 물방울에 무지개도 걸리고
근육질 가지마다 보석이 반짝인다
자신의 뿌리 끝 영혼을
향해가는 순례의 시간
◆임영숙
경기 용인 출생. 2014년 ‘나래시조’ 신인상 등단. 시조집 『풀잎의 흔들림이 내게 건너왔으니』, 『들판 정치』.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젊은시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전영택문학상 등 수상.
언어가 가름해놓은 계절이라는 이름 중에 가을만큼 오묘한 계절이 또 있을까. 아름다운가 하면 쓸쓸하고 화려한가 하면 추레한 시간이 가을 속에 있어 우리는 총체적인 사색의 길로 접어든다. 그러기에 “벌레 먹은 나뭇잎”에서 “별”을 찾고 작은 “물방울”에서 “무지개”를 보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가을은 무정한 계절이기도 하다. 여름이 활짝 피워 올린 꽃들을 하나둘 떨구게 하고, 눈부시던 것들이 빛을 거두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을은 아름다움의 절정이면서 동시에 소멸의 시작이리라.
“한 그루 나무”에도 “만 그루 어둠”이 사는 가을이, “꽃”을 이끌고 어딘가로 간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의 뒷모습은 순례자처럼 고단하지만, 그나마 참 다행인 것은 계절은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절망이 밀려오다가도 어느 순간 우리는 다시 일어설 힘을 찾아내니 말이다. 작가는 끝이 아니라 순환을, 상실이 아니라 귀환을 말하고자 했으리라 짐작해본다. 더불어 “문학은 오독(誤讀)이 아닌 이독(異讀)이 있을 뿐”이라는 말에 기대었음을 조심스레 적어본다.
시조시인 강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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