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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의 테아트룸 문디] 분장실과 문지방

중앙일보

2026.02.24 07:02 2026.02.24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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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화 극작가·연출가
연극 작품 중에는 분장실을 소재로 한 작품이 제법 많다. 지금 공연 중인 ‘더 드레서’나 ‘사의 찬미’도 그렇고 일본 극작가 시미즈 구니오의 ‘분장실’, 지난해 주목받았던 국립극단의 ‘안트로폴리스 I’(사진)도 분장실의 컨셉을 활용했다.

왜 연극은, 그리고 관객들은 분장실에 매혹되는 것일까. 분장실은 무대에서 보기 힘든 실제 배우의 모습이나 그가 역할로 변신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색다른 감각을 선호하는 현대인이 리얼리티쇼에 열광하듯, 연극의 이면을 훔쳐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런 감각적인 즐거움만이 아니라 어쩌면 분장실은 그 이상의, 생의 진실을 함축한 상징적 공간 아닐까.

연극을 인류의 상징문화와 연결해서 조망하는 연극인류학은 통과의례를 분석하는 리미널리티(Liminality)라는 개념을 즐겨 사용하곤 한다. 리미널리티는 문지방을 뜻하는 라틴말 ‘limen’에서 온 말로, 어떤 영역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지대를 뜻한다.

인간은 관혼상제처럼 생의 여러 단계를 거치는데, 다음 단계로 훌쩍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문지방 같은 경계지대를 통과하면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 리미널한 단계에서 기존의 정체성은 와해되고, 나는 과거와 미래의 나 사이에서 유동한다. 다음 단계에 과연 무엇이 기다릴지, 새로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불안과 공포를 감내하며 정체성의 해체와 재탄생을 경험한다.

배우가 무대에 등장하기 전의 분장실은 인간의 리미널한 상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분장실에서 배우의 일상과 변신 그리고 불안을 지켜보면서 관객들은 어쩌면 자신의 심연과 만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곧 3월. 겨울도 봄도 아닌 리미널한 계절이 끝나간다. 입학을 비롯해 생의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모든 새내기들이 부디 다음 단계로 잘 나아가시길 바란다.

김명화 극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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