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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스페인의 국립로마미술관

중앙일보

2026.02.24 07:08 2026.02.24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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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전 총장
기원전 1세기, 카르타고가 지배하던 이베리아 반도는 포에니 전쟁에 승리한 로마의 속주인 히스파니아가 되었다. 최서단에 설치한 제대군인들의 주둔지, ‘아우구스타 에메리타’는 히스파니아 최대 도시인 메리다로 발전했다. 인근 금광을 개발하기 위해 예비군의 정착지로 시작했으나 내륙교역로 ‘은의 길’의 중심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서로마 멸망 이후 게르만족과 이슬람 무어인의 지배로 쇠락했으나 로마의 수도교와 다리, 신전과 개선문, 그리고 원형경기장과 극장의 유적들이 남아 ‘스페인 속의 로마’가 되었다. 원형경기장 인근을 발굴 조사한 결과 로마의 포장도로와 상수도, 저택 유구와 수준 높은 조각상 등 많은 유물을 발견했다. 이 유적을 보존하고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현장 박물관을 건립했다.

1986년 개관한 메리다 국립로마미술관(사진)의 건축가는 스페인의 대가 라파엘 모네오(1937년생)다. 그는 장소의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 건축의 출발이며 그 지역의 토속 기법을 사용하는 ‘테루아르’를 중요하게 여긴다. 로마 유적과 2000년이 지난 현대 기술 사이의 관계를 맺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다.

전시 공간의 표피는 반복적으로 쌓은 벽돌 아치지만 뼈대는 숨겨진 철근콘크리트다. 얇고 긴 벽돌은 로마 것이 아니라 특수 제작한 현대 제품이다. 얼핏 로마의 바실리카에 들어온 듯하지만 10개의 벽체를 반복한 전시실은 지극히 현대적인 공간이다. 높은 천창의 빛으로 투명한 전시실은 마치 야외 유적지 그 자체처럼 느껴진다. 반면에 실제 발굴 유적을 보존한 지하층엔 벽돌 아치를 촘촘히 배열해 유적과 구조 사이의 긴장감을 일으킨다.

정교한 모자이크와 사실적인 조각상 등 스페인 최고의 로마 유물도 일품이지만 마치 이미 있었을 법한 ‘가상적 과거’를 창조한 건축도 대단하다. 역사적 시간을 현대공간 안에 어떻게 품을지, ‘개념적 고고학’으로 명쾌한 해법을 보여줘 건축가에게 프리츠커상을 안겨준 대표작이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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