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총리, 미국에 '무역 바주카포' 엄포놓고 중국행(종합)
트럼프 '글로벌 관세'에 강경조치 배제 안해
중국엔 디리스킹 전략 고수…독일매체 "조아리지만 마라"
(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유럽과 미국 사이 통상분쟁에서 보복관세는 물론 서비스와 외국인 직접투자 등을 제재하는 초강경 조치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메르츠 총리는 23일(현지시간) dpa통신 주최 콘퍼런스에서 유럽연합(EU)의 통상위협대응조치(ACI)를 언급하며 "이 수단을 쓰지 않고 무역 분쟁을 끝낼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고 내가 끝까지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ACI는 EU나 회원국을 경제적으로 위협하는 제3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서비스, 외국인 직접투자, 공공조달 등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다. 금융시장 접근 차단과 지식재산권 분야 제재도 가능하다.
EU는 2023년 이 제도를 법으로 만들고 '무역 바주카포'로 부르고 있으나 발동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덴마크령 그린란드 군사훈련에 병력을 보낸 유럽 8개국에 추가관세를 예고하자 유럽 일각에서 논의된 바 있다.
당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ACI 발동을 요구하며 강경파를 주도했다. 반면 메르츠 총리는 독일의 이익을 지키겠다면서도 갈등 고조는 피하고 싶다며 ACI 발동을 사실상 배제했었다. 시행할 경우 대서양 무역관계가 사실상 파탄 나는 만큼 유럽 관료들 사이에서는 제도 존재만으로 공세 차단 효과를 내는 일종의 '경제 핵무기'라는 인식이 강하다.
메르츠 총리의 발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명 상호관세가 위법이라는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에 글로벌 관세를 새로 도입해 무역 불확실성이 다시 커지는 가운데 나왔다. 그는 24일부터 내달 초까지 세계 경제 양대 축이자 EU와 통상갈등 중인 중국과 미국을 차례로 방문한다.
메르츠 총리는 이날 중국으로 출국하면서 "균형 잡히고 신뢰할 수 있으며 규칙적이고 공정한 파트너 관계를 원한다"며 중국의 과잉생산과 경쟁 왜곡 등을 어떻게 해결할지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과 디커플링(공급망 분리)은 우리에게 해가 될 뿐"이라며 디리스킹(위험제거) 정책은 중국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은 지난해 트럼프 관세의 영향으로 미국과 독일 사이 무역이 급감하면서 2년 만에 다시 독일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 됐다. 그러나 독일에서 중국으로 수출은 813억유로(138조3천억원)로 1년 사이 9.7% 줄고 수입이 1천706억유로(290조3천억원)로 8.8% 늘면서 독일의 대중국 무역적자가 893억유로(152조원)까지 불어났다.
레빈 홀레 총리실 경제보좌관은 "우리는 오랫동안 상당한 수출을 성공적으로 해왔지만 이제는 중국이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커다란 흑자를 내고 있다. 이건 분명히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재계에서는 미국도 중국도 신뢰하기 어렵다며 EU가 호주·캐나다·일본 등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국들과 무역 블록을 따로 만들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집단방위처럼 관세 공격에 공동 대응하자는 주장까지 나오는 중이다.
독일 총리실은 중국을 상대로 디리스킹 전략, 즉 무역정책의 취약점 해소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독일 기업의 현지 시장 접근성을 넓힌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메르츠 총리의 방중에는 중국에서 몇 년째 고전 중인 폭스바겐과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자동차 3사와 지멘스·아디다스·DHL·바이엘·코메르츠방크 등 독일 기업 대표 30명이 동행한다.
그러나 방중 일정에 중국 로봇기업 유니트리 방문이 포함되자 벌써 굴욕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중국이 이 업체 휴머노이드 로봇들의 쿵푸 퍼포먼스를 국영TV에 방영하며 선전 수단으로 삼는다면서 "이제 기술강국 독일 총리까지 가서 '메이드 인 차이나' 하이테크에 감탄한다"고 비꼬았다.
이 매체는 "중국 관료들이 넘치는 힘 때문에 걷기도 힘들 정도"라는 현지 유럽 업체 인사들의 말을 전하면서 "메르츠 총리는 중국에서 뭐든 할 수 있지만 머리를 조아려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최근 석 달 사이 중국을 찾은 주요 7개국(G7) 정상은 프랑스·영국·캐나다에 이어 메르츠 총리가 네 번째다.
메르츠 총리는 "중국이 주요 강대국으로 부상했다"며 오는 4월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 전에 프랑스·영국·독일 정상이 몇 주 간격으로 중국을 찾는 건 우연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13일 뮌헨안보회의 연설에서 "중국이 타국의 의존을 체계적으로 이용하고 국제 질서를 자국에 유리하게 재정의한다"며 미국과 싸잡아 비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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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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