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정부는 지난 11일(현지시간) 아우레(Aure)·헤임(Heim) 지역 산업단지 내에 최대 1.5기가와트(GW) 규모의 소형모듈원전(SMR) 단지를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상업용 원자력발전소가 없는 노르웨이는 필요 전력의 90% 이상을 수력 발전에 의존한다. 최근 향후 전력 수요에 대응하려면 원전을 피할 수 없다는 여론이 번지면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 원전을 가동 중인 스웨덴·핀란드 등 주변국의 움직임이 영향을 미쳤다. 스웨덴 정부는 오는 2045년까지 SMR을 포함해 10기 분량의 신규 원전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에너지 정책의 전통적인 화두는 ‘트릴레마’였다. 전력의 안정성(안보성), 경제성, 환경성(탄소성)이다. 이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발전원을 찾는 게 관건이었다. 정답은 없었다. 석탄은 값싸고 안정적이지만 기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재생에너지는 깨끗하지만 비싸고 간헐적이다.
최근엔 ‘4중 딜레마(쿼드딜레마)’로 확대됐다. 급격한 인공지능(AI) 전환이 ‘속도’라는 네 번째 함수를 더하면서다. AI의 기반인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은 365일 24시간 멈추지 않는 전력이 전제 조건이다. 더 큰 문제는 AI 시장의 성장 속도다. 최대한 빨리 전력 수요 대책을 찾는 게 AI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는 조건이 됐다는 의미다.
각국이 택한 유력한 대안이 바로 원전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전망에 따르면 전 세계 원전 설비용량은 2023년 416GW에서 2050년 650GW로 늘어난다. 각국이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원전 확대 정책을 펼 경우 예상 설비용량은 870GW로 커진다. 이중 SMR 설비용량은 같은 기간 0.2GW 수준에서 최대 120GW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이재명 정부도 11차 전력기본계획에 포함된 대형 원전 2기와 SMR 1기를 계획대로 건설하기로 하는 등 탈원전 정책에서는 방향을 틀었다. 다만 정부 에너지 정책의 무게추는 여전히 재생에너지에 쏠려 있다. 정부는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을 2030년까지 100GW로 늘리기로 했다. 5년 내 현재 설치된 태양광과 해상풍력 발전소 2배 수준의 용량을 추가해야 한다.
문제는 재생에너지의 가파른 확대가 불러올 비용이다. 노동석 서울대원자력정첵센터 연구원이 24일 ‘원자력 지속가능성에 대한 워크숍’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한국의 태양광 발전의 균등화발전원가(LCOE)는 메가와트시(MWh) 당 95.6달러로 미국 55달러, 유럽연합(EU) 50달러와 비교해 두 배가량 비싸다.
반면 한국 원전의 균등화발전원가는 MWh당 45달러로 미국(110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균등화발전원가는 발전소의 건설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총 발전량으로 나눈 수치로, 발전원의 효율을 재는 지표다. 노 연구원은 “한국은 화석연료뿐 아니라 재생에너지 자원도 부족한 국가”라며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면 전기요금 또한 상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간헐성도 문제다.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이 전력거래소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재생에너지의 피크시간 이용률은 20~30% 수준이다. 피크시간 이용률은 발전 설비용량 대비 실제 발전한 비율로, 발전소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수치다. 반면 원전의 피크시간 대 이용률은 60~80% 수준이다.
태양광 발전의 전력 생산이 낮에 집중되는 탓에 한낮에 화력 발전 등의 출력을 임의로 줄여 이들 발전원이 담당하는 수요를 뚝 떨어뜨리고 밤에는 반대로 화력 발전 등의 발전량을 급격히 올리는 이른바 ‘덕(DUCK) 커브’ 현상도 일상화했다. 이정익 카이스트 교수는 “태양광 발전은 100번을 요구하면 10번만 응답하는 전력원”이라며 “반도체나 AI 등 첨단 산업에도 이런 간헐성 있는 재생에너지가 정답인지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SMR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궁합이 잘 맞는 발전원으로 꼽힌다. 대형 원전은 한 번 멈추면 계통 충격이 큰 반면, SMR은 모듈 단위로 출력 조절이 가능해 재생에너지를 보완하는 전원 역할을 할 수 있다. 원자력학회는 정부가 준비 중인 12차 전기본에 적어도 추가 대형 원전 2~4기와 SMR 2기를 추가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최성민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은 “원전 대 재생에너지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보지 말고, 재생에너지 확대에 맞춰 SMR 등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