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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사냥꾼 먹잇감 될라"…자사주 의무소각 앞두고 재계 '패닉'

중앙일보

2026.02.24 12:00 2026.02.24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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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국회에서 열린 2월 임시국회 제8차 본회의에서 3차 상법 개정안이 상정된 후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시작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자본시장의 뜨거운 감자였던 ‘자기주식(자사주) 의무 소각’이 현실화하면서 파장이 예상된다. 대주주의 편법적인 지배력 확대를 막고 일반 주주가치를 제고하겠다는 목적이지만 당장 ‘경영권 방어 수단’을 잃어버린 재계는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회사가 새롭게 취득한 자사주를 1년 이내에 의무적으로 소각하도록 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됐다. 전날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지 하루 만이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진행한 뒤 조만간 본회의 문턱을 넘을 전망이다.


개정안에 따라 앞으로 상장 기업들은 신규 매입한 자사주를 기한 내에 소각해야 하며, 이를 어길 경우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기존에 보유 중인 자사주는 법 시행일로부터 1년6개월 안에 소각해야 하고, 외국인 투자 지분 제한 기업의 경우 3년 내 처분해야 한다.



정치권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기대”

코스피가 사상 최고가를 또다시 경신한 24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표시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종가. 이날 코스피는 전장대비 2.11% 상승한 5,969.64로 마감했다. 뉴스1
증권시장과 소액주주 연대 등은 이번 상법개정안 통과를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한 뒤 이를 소각하면, 증시에서 유통되는 총 주식 수가 줄어든다. 회사의 총이익은 그대로인데 주식 수가 감소하므로, 자연스럽게 1주당 가치(EPS·주당순이익)가 커져 주가도 상승하는 구조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제도화하면서 ‘주주환원 확대→ 자기자본순이익률(ROE) 개선→ 주가순자산비율(PBR) 재평가’ 흐름이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PBR은 회사의 순재산 대비 주가가 어느 정도인지 나타내는 지표로, 1배 미만이면 주식 가치가 저평가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권에선 그동안 대주주가 회삿돈으로 매입한 자사주를 인적분할 과정 등에 활용해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던 ‘자사주 마법’이 원천 차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날 본회의에서 3차 상법개정안 제안설명에 나선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기업의 이익을 소수의 지배주주가 독점하는 게 아니라 모든 주주에게 공정하게 배분되도록 함으로써 우리 증시의 체질을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완전히 탈바꿈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경영권 방어 무력·유연성 훼손 우려

그러나 경영권 방어 수단이 ‘무장해제’된 재계는 암울한 분위기다. 앞서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 8단체는 3차 상법개정안과 관련해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도록 합리적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정부와 국회에 전달했다.

가장 우려되는 건 적대적 인수합병(M&A) 공격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행 상법상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 자체에는 의결권이 없다. 하지만 적대적 M&A나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이 임박했을 때, 회사가 자사주를 우호적인 제3자(백기사)에 매각해 의결권을 부활시킨다. 미국 등 선진국과 달리 포이즌필(기존 주주나 제3자에 시가보다 낮은 값에 주식을 매입할 권리를 주는 신주인수선택권)이나 차등의결권 등 방어수단이 도입되지 않은 한국 시장에서, 자사주는 사실상 기업들의 유일한 경영권 방어막 역할을 해왔다.



“방어 수단 없는데 비자발적 자사주까지 소각”

김영옥 기자
재계에선 M&A나 지주회사 전환 등 사업구조 개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취득하게 되는 비자발적 자사주까지 일괄적으로 소각 대상에 포함된 점도 문제로 꼽는다. 이번 개정안에서 인정된 예외 사유는 ▶임직원 보상 ▶우리사주 제도 실시 등이다. 재계 관계자는 “자사주를 활용한 전략적 투자나 위기대응을 원천 봉쇄해 놨다. 사실상 자사주 활용의 전면금지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코스피 시장에서 33조3907억원, 코스닥 시장에서 3조1882억원 등 총 36조5000억원 규모의 비자발적 자사주가 소각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분석했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 교수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려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신 교수는 “시장 안정이나 M&A 등 기업의 정상적인 자사주 활용마저 비정상으로 몰며 오직 소각만 강제하는 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적반하장”이라며 “일부 지배구조 문제가 있다면 개별적인 핀셋 규제를 해야지, 150조원에 달하는 자산을 강제로 불태워 방어권의 손발을 묶으면 결국 ‘기업 사냥꾼’에게만 판을 깔아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자사주 문제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근본적인 공포감을 호소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치권이 기업과의 소통은 단절한 채, 일부 기업의 일탈을 명분 삼아 전체 상장사의 자율적 거버넌스까지 옥죄는 ‘연대책임식 과잉 입법’이 일상화될까 두렵다”고 토로했다.



이우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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