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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 치던 아이 '예일대' 보냈다…새벽 막일로 난민 돕는 남자

중앙일보

2026.02.24 12:00 2026.02.24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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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직 건설 노동자이자 화가인 이두수 작가. 13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에서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 단체 이름이 아프리카ㆍ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인데…계속하다 보니 나랑 내 가족이 ‘난민’이 되더라고요. "

‘비정부기구(NGO) 대표’ ‘일용직 노동자’ ‘화가’…. 이두수 작가를 수식하는 표현은 여럿이다.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에서 만난 그는 “2013년부터 아프리카ㆍ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 사무국장과 대표를 맡고 있는데, 이 활동만으론 생계를 잇기 어려워 2018년부터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 접한 현장 일은 녹록지 않았다. 40㎏에 달하는 시멘트를 지하에서 4층까지 등짐으로 옮기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보니 초반엔 새벽 3시면 몸이 아파서 저절로 눈이 떠졌다. 그렇게 수년을 버티니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는 “노동하며 땀을 흘리는 일이 오히려 몸 안의 화를 푸는 계기가 됐다”며 “자르고, 갈고, 닦는 ‘절차탁마(切磋琢磨)’를 실천한다고 생각하니 인격 수양 같았다”고 웃었다.

노동 현장의 사람과 풍경을 담은 이두수 작가의 그림. 사진 이두수 작가
일에 적응한 지금은 후원회 활동과 개인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퇴근 후 매일 1시간씩 그림 그리기, 독서, 달리기를 한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2018년부터 스케치북에 그리기 시작한 작품이 어느새 박스 세 개를 꽉 채웠고, 연 6회 이상 전시를 연다. 독서는 철학ㆍ과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연간 100권이 목표다. 차곡차곡 칼럼도 쓰고 책도 냈다.

그에가 가장 각별한 수식어는 ADRF 대표다. 젊은 날 야학을 운영한 경험이 계기가 됐다. 그는 “할머니와 둘이 살며 염소를 치느라 학교도 못 가던 케냐의 아동을 후원했는데, 그 아이가 미국으로 건너가 예일대까지 합격한 사례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ADRF는 오는 28일 ‘후원자의 날’ 행사를 열고 후원 아동 편지 낭독회, 활동 보고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 후원 아동의 편지. 사진 이두수 작가



줄지 않는 산재 “노동자 의식·태도 바뀌어야”

교육 지원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장면을 본 그는 일터인 건설 현장 안전에 있어서도 교육, 또 이를 통한 노동자의 의식ㆍ태도 변화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뒤 법이 경영자를 압박하고, 현장 안전 요원을 배치돼 위험한 행동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면서도 “노동자를 관리ㆍ통제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선에 반발도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안전 관련 회의를 할 때 노동자들이 자기 경험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관리자 중심의 일방적인 강의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짚었다.

실제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4년이 지났지만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수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5년 3분기(누적) 재해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457명으로, 전년 동기 443명보다 14명(3.2%)이 늘었다.

난민 교육 후원 단체 대표이자 건설 현장 노동자인 이두수 작가가 현장에서 그라인더를 들고 찍은 사진. 사진 이두수 작가



"외국인 노동자는 현장에서 버팀목"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도 있다. 젊은 인력은 줄고 외국인 노동자는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가는 “젊은이들은 현장에 와도 당장 기술 없이 할 수 있는 청소 등 단기 업무를 선호한다”며 “이를 대체하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선 사회적으로 혐오 섞인 시선이 많지만, 겪어보면 오히려 한국 사람보다 더 성실히 일하는 동료로 버팀목이 된다”고 말했다.

시간을 쪼개가며 학업도 병행한 이 작가는 오는 8월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예정이다. 현장에서 느낀 문제의식을 담은 논문의 주제는 ‘한일 건설 현장 안전: 아비투스에서 행위로의 전이’로, 노동자 주도적인 행동으로 바뀌어야만 실질적 안전이 확보된다는 내용이다.

나아가 이 작가는 건설 현장에서 인문학과 예술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현장에서 동료의 모습을 그려주자, 가족에게 자기 일을 숨기던 그가 ‘아빠가 하는 일을 가족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졌다’고 해 큰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짧은 글쓰기나 공연 같은 인문학적 접근도 사람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현장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아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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