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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없는 제천서 웬 오뎅축제…부산이 울고갈 500원짜리 '빨간맛'

중앙일보

2026.02.24 12:00 2026.02.24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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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은 빨간오뎅의 본고장이다. 제천에서는 어묵에 매콤한 소스를 바르고 대파를 듬뿍 뿌려서 먹는다.
요즘 분식 축제가 뜬다. 구미 라면축제, 대구 떡볶이 페스티벌, 원주 만두축제, 김천 김밥축제가 대표적이다. 모두 코로나 시대에 시작했으니 길어봐야 역사가 5년 남짓한 신생 축제들이다. 지난해 도전장을 던진 후발주자도 있다. 오는 28일부터 3월 2일까지 제2회 빨간오뎅축제를 개최하는 충북 제천시다.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어묵의 본산 부산이 아니라 첩첩산중의 중부 내륙 도시에서 오뎅축제를 연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청풍호(충주호) 잉어로 어묵을 만드나? 왜 어묵이 아니고 오뎅일까? 몇 가지 궁금증을 품고 제천을 찾았다.



중앙시장 노점상이 시초

분식 축제의 탄생 배경은 제각각이다. 이를테면 구미시는 식품 기업 ‘농심’의 대형 공장이 위치해 있다. 김천시는 젊은이들이 김밥 체인점 ‘김밥천국’을 ‘김천’으로 줄여서 말하는 현상을 주목해서 축제를 열었다. 제천의 경우는 또 다르다.
지난해 축제에서 제한 시간 동안 빨간오뎅 많이 먹기를 겨루는 '푸드 파이터 챌린저' 모습. 사진 제천시

제천시는 2021년 특허청에 ‘제천빨간오뎅’을 상표로 등록했다. 빨간오뎅의 원조가 제천이라는 걸 명토 박기 위해서였다. 제천에는 어묵 공장이 없다. 그러나 빨간오뎅을 전문으로 파는 분식집은 스무 곳이 넘는다. 이 가운데 열세 곳이 제천 중심가의 큰 시장(중앙시장·내토전통시장·동문시장)에 모여 있다. 진짜 원조가 누구인지는 제천 사람도 모른다. 다만 지금은 사라진 중앙시장 먹자골목 노점상이 원조라고 입 모아 말한다.

누가 처음으로 빨간오뎅을 만들어 팔았는지보다 중요한 사실이 있다. 제천 사람이면 누구나 빨간오뎅을 즐겨 먹는다는 사실이다. 중고등학생부터 노인까지 분식집 앞에 줄을 서 꼬챙이 들고 새빨간 오뎅을 먹는다. 오뎅이 외래어인 줄 알지만, 추억 깊은 소울푸드여서 굳이 ‘빨간어묵’이라 하지 않는다. 내토전통시장 김정문(67) 상인회장의 설명이다.
“명절에 고향 찾아온 제천 사람은 가장 먼저 분식집으로 달려가서 빨간오뎅을 먹었습니다. 1980~90년대만 해도 제천 밖에서는 빨간오뎅 파는 곳이 없었거든요.”
내토전통시장을 비롯한 제천 시장에 자리한 분식집에는 종일 빨간오뎅을 먹는 사람의 발길이 이어진다.

외지인이 빨간오뎅 맛에 눈을 뜬 건 2000년대 들어서다. 2005년 시작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도 기폭제 역할을 했다. 10만명이 넘는 방문객이 제천 시내에 몰렸고, 이들이 전국으로 빨간오뎅을 소문냈다. 2015년 영화제에서 일했던 여행작가 백종민(45)씨는 “제천문화극장(구 메가박스) 앞 분식집이 밤늦게까지 영업해서 야식으로 빨간오뎅을 즐겼다”고 말했다.



청양고추 듬뿍 넣은 소스

제천에서는 빨간오뎅을 포장해 가는 사람도 많다. 1만원어치 빨간오뎅을 포장하는 상인의 모습.
시장을 순례하며 여러 종류의 어묵을 먹어봤다. 가격은 다 같았다. 1개 500원. 최소 결제액이 2000원인 집도 있는데, 어묵이 작아서 한 사람이 서너 개는 거뜬히 먹는다. 안 매운 ‘물오뎅’이나 튀김을 곁들이기도 한다. 빨간오뎅을 1만원어치 포장해가는 사람도 많다. 주민 김영란(57)씨는 “시장 나올 일 있으면 꼭 오뎅을 사 가서 가족과 함께 먹는다”고 말했다.

내토시장 안에 자리한 ‘외갓집’부터 가봤다. 서울식 ‘빨간어묵’과는 생김새부터 달랐다. 서울은 얼큰한 국물에 어묵을 팔팔 끓여서 어묵국처럼 내지만 이 집은 달랐다. 넓고 얕은 사각 팬에 국물을 자작할 정도만 깔고 가지런히 정렬한 어묵에 매콤한 소스를 발라놨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 채 썬 대파를 어묵에 듬뿍 얹어 내준다.

맛은 한 마디로 강렬했다. 어묵이 불지 않아서 쫄깃한 식감이 살아 있었고, 아삭아삭한 파 맛도 좋았다. 생긴 대로 매운맛이 진했다. 입이 얼얼하고 속이 후끈했다.
제천 문화극장 앞에 자리한 제천명물 빨간오뎅.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된 집이어서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다.
동문시장 빨간오뎅은 파와 함께 참깨를 얹어서 내준다. 소스 맛이 달큰한 편이다.

다른 분식집도 가봤다. 제천 사람은 소스 맛에 따라 선호하는 분식집이 다르다는데 ‘맵찔이(매운 음식에 약한 사람)’ 입장에서는 별 차이가 안 느껴졌다. 청양고추를 많이 넣어서 매운맛이 훅 치고 들어오는 집(제천명물 빨간오뎅)도 있고, 소스에 과일을 갈아 넣어서 단맛이 도드라지는 집(동문시장 빨간오뎅)도 있었다. 다 자극적인데 묘하게 중독적이었다.

주인에게 왜 이리 맵냐고 물으면 답은 같았다. 제천이 워낙 추운 탓에 매운 음식을 먹어서 몸에 열을 돌게 했다고. 빨간오뎅을 먹을 때마다 관자놀이에 땀이 맺혔다.



만둣국, 순댓국도 얼얼하네

빨간오뎅 축제는 제천역 광장에서 진행한다. 25개 음식 부스에서 빨간오뎅뿐 아니라 떡볶이·튀김 등 다양한 분식을 맛볼 수 있다. 어묵 먹기 대회와 라이브 공연도 펼쳐진다. 중요한 사실. 축제에 참여하지 않는 유명 분식집도 있으니 알아두자. ‘외갓집’ ‘제천 원조 보금자리’ 등은 주인이 가게를 비울 수 없단다.
3년 전 내토시장에서 동문시장으로 이전한 옥전만두국. 김치만두가 입이 얼얼할 만큼 맵다.
우성순대에서 먹은 순대 모둠. 순대와 돼지 부속을 넉넉히 내준다. 순대 맛이 매콤하다.

제천까지 가서 500원짜리 분식만 먹고 올 순 없겠다. 전통시장에는 어묵 말고도 ‘제천의 맛’으로 손꼽는 음식이 많다. 만둣국이 그중 하나다. 시장 안팎의 여러 만둣집 가운데 동문시장의 ‘옥전만두국’을 가봤다. 대표 메뉴인 김치떡만둣국(8000원)을 먹었는데 두 가지가 놀라웠다.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을 정도로 양이 많았고, 찬물을 거푸 마셔야 할 만큼 만두가 매웠다. 찐만두를 포장하면 1만원에 스무개이니 빨간오뎅과 가격이 같은 셈이다. 시장 인심도 놀랍다.

옥전만두국 주변에는 순댓국집도 많다. 가장 규모가 큰 ‘우성순대’에서 모둠 순대(1만3000원)를 먹었는데 “역시” 하고 탄성이 나왔다. 접시에 순대와 고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순대마저 매콤했다.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순대 소에 청양고추를 넣는단다.
제천시락국에서 먹은 시래기밥. 구수한 시래기밥과 국, 정갈한 밑반찬이 돋보인다. 곁들임 메뉴인 달걀 말이는 3000원이다.

매운 음식이 지친다면 제천역전한마음시장 앞 ‘제천시락국’을 추천한다. 메뉴는 일종의 세트 메뉴인 ‘시래기밥(1만원)’ 딱 하나다. 제천시 백운면에서 생산한 단무지용 무의 이파리만 말려서 시래기로 쓴다. 가자미로 육수를 낸 시래기국은 감칠맛이 은은하고, 시래기를 잘게 다져 넣은 시래기밥은 구수하다. 밑반찬으로 내주는 섞박지와 장아찌도 자극적이지 않다.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만 영업한다.
박경민 기자



최승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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