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창업 산실로 떠올라 교수가 이끄는 딥테크 창업 성과 학생은 유연한 사고로 시장 개척 교육과정 전반에 기업가 정신 확대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수원)의 ‘로보토리 연구실’은 로봇 연구와 창업의 산실이다. 최혁렬(64) 기계공학부 교수가 이끌고 있는 이 연구실에서 코스닥 상장기업 KNR시스템 등 5개 기업이 배출됐다. 최 교수의 1호 박사제자인 류성무씨가 지난 2000년 공동창업한 KNR시스템은 무거운 물체를 들어야 하거나 고온·고압의 극한 환경에서도 작동하는 유압식 로봇기술로 성장했다. 사람이 들어가기 힘든 제철소의 고온 작업, 원자력 발전소 해체, 심해 탐사 등에 쓰이는 로봇팔과 모바일 플랫폼 등을 만든다. 2024년 3월 코스닥에 기술특례 상장, 최근 시가총액 4000억원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2019년 11월 이윤행(39) 박사가 최 교수와 공동창업한 에이딘로보틱스는 로봇이 힘 조절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힘·토크 센서’를 만드는 회사다. 고가의 외국산에 의존하던 고정밀 로봇용 힘·토크 센서를 수입품 대비 10분의 1 가격으로 국산화했다. 로봇부품이 주력이지만, 4족보행 로봇도 생산하고 있다. 세계 15개국 400여개 기관에 여러 제품을 공급하고 있으며, 최근까지 200억원을 투자 유치했다. 베트남 국적의 제자들이 졸업 후 고국으로 돌아가 현지 창업한 로봇 스타트업 ‘아피쿠로보틱스’도 있다. 최혁렬 교수는 “석·박사 합쳐 150명의 제자를 배출했는데, 대부분이 학계가 아닌 산업계로 갔다”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학교에서 개발한 기술로 창업을 하거나 기업에서 활용하는 쪽으로 연구실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600년 역사와 전통의 성균관대가 연구·개발(R&D) 기반 딥테크 기술 창업의 산실로 떠오르고 있다. 최혁렬 교수의 로보토리 연구실만의 얘기가 아니다. 학내 창업 바람이 본격화하기 전인 십여년전 이미 창업해 상장에 성공한 기업들도 여럿이다. 국내 RNA분야 권위자인 이동기 화학과 교수가 2010년 창업한 신약 개발 스타트업 올릭스가 2018년 코스닥에 상장한데 이어, 박웅양 의과대학 교수가 창업한 유전체 분석과 정밀 의료 플랫폼 스타트업 지니너스(2021년), 변도영 기계공학과 교수가 창업한 초정밀 프린팅 및 코팅 솔루션 스타트업 엔젯(2022년) 등 교원창업 기업들이 연이어 상장에 성공했다. 최근 3년간(2023~2025년) 창업지원단의 지원을 받은 창업 기업들의 누적 매출액은 약 1050억원에 달한다. 고용 창출 효과도 크다. 성균관대 지원 기업들은 매년 160명 안팎의 신규 고용을 유지하며 지역 사회의 청년 일자리 문제 해소에 기여하고 있다. 최근 5년간 교내 창업기업의 누적 투자 유치액은 2000억원을 넘어섰다. 이들이 창출한 기업가치는 1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성균관대 창업의 핵심은 교수가 이끄는 ‘딥테크’다. 단순한 아이디어 차원을 넘어 수십 년간 축적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이오 분야의 아임뉴런이다. 서민아(글로벌바이오메디컬공학과)·김용호(나노공학과) 교수와 김한주 대표가 2019년 공동창업한 이 기업은 뇌혈관장벽 투과 기술인 ‘트랜스맙’ 플랫폼을 통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등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까지 약 5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유한양행과 CNS(중추신경계)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등 산학융합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고있다. 소재·부품 분야의 혁신도 거세다. 남재도 화학공학부 교수가 2019년 창업한 ‘비드오리진’은 반도체 공정의 핵심 소재인 ‘습식 세리아 연마입자’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는 세계적으로 2~3개국만 보유한 고난도 기술로, 반도체 생산 수율과 직결되는 초격차 소재다. 남 교수는 “창업을 지원해 준 대학과 정부에 감사하며, 굳건히 시장 진입을 위해 매진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밖에도 소재·에너지 분야의 ‘CRHM(씨알에이치엠)’ 등 교수 실험실에서 탄생한 스타트업들이 산업계의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성균관대 창업지원단이 설정한 향후 5년간의 목표치는 파격적이다. 대학발 창업 기업들을 통해 총 매출액 2조원 달성과 9500개의 일자리 창출을 공언했다.
김경환 성균관대 창업지원단장은 “우리의 목표는 단순한 수치를 넘어 지역 경제와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창업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라며“텍스코어(공공기술기반 시장연계 창업탐색 지원사업)과 실험실특화형 창업선도대학, 그리고 창업중심대학 이어지는 3단계 지원 체계를 통해 교수들이 연구에 집중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수들이 원천기술로 산업의 토대를 다진다면, 학생 창업가들은 유연한 사고와 도전 정신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학생 창업의 대표 주자는 자연모사 기술을 활용한 ‘미메틱스’다. 화학공학과 박사과정인 박형기 대표가 학위 과정 중 연구한 기술을 바탕으로 2022년 창업했다. 문어 빨판의 원리를 이용해 화학 접착제 없이도 강력하게 부착되는 음압 패치를 개발했다. 기존 화장품 패치의 부작용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이 기술은 현재 코스메틱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으며, 향후 메디컬 디바이스 분야로의 확장을 준비 중이다. 미메틱스는 성균관대의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한 대표적인 ‘캠퍼스 스타트업’이다.
성균관대는 창업중심대학 사업을 통해 학생 창업가들에게 시제품 제작부터 투자 유치, 글로벌 진출까지 밀착 지원하고 있다. 학생 창업 활성화를 위한 ‘창업 친화적 교육과정’도 도입했다. 창업 대체 학점제, 창업 휴학제 등 제도적 장치는 물론, 선배 창업가들과의 멘토링 프로그램인 ‘성균 창업 포럼’을 통해 실전 노하우를 전수한다. 김경환 단장은 “학생들은 대학의 글로벌 파트너십을 활용해 해외 시장으로 시야를 넓히고 있다”며 “대학이 단순한 취업 준비처가 아닌 ‘혁신의 발원지’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성균관대의 이런 행보의 뒤에는 수장들의 확고한 비전이 자리잡고 있다. 유지범 성균관대 총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향후 10년을 준비하는 핵심 역량으로 ‘기업가 정신’을 천명했다. 유 총장은 “기업가 정신은 우리 대학이 변화를 따라가는 대학이 아닌 ‘선도하는 대학’으로 도약하게 하는 근본적 토대”라며 “2026년부터 교육과정 전반에 기업가 정신 교육을 확대하고 글로벌 파트너십을 통한 개방형 혁신 창업 생태계를 본격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유 총장은 스탠퍼드에서 반도체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나노소재 분야 권위자다. 유 총장의 전임인 신동렬 총장은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삼성데이타시스템(현 삼성SDS)를 거쳐 성균관대 교수로 왔다. 2019년 취임 당시 성균관대 600년 역사상 처음으로 이공계 출신 총장으로 화제가 됐다. 박재완 학교법인 성균관대학 이사장은 “교육의 질과 연구 영향력, 사회 기여에 이르기까지 ‘세계 표준’을 넘어 그 표준 자체를 세워나가야 한다”며 창조적 지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