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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민주당은 미쳤다"…108분간 美를 좌우로 나눈 'TV쇼'

중앙일보

2026.02.24 23:54 2026.02.25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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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하지 않았지만 제가 말하겠습니다. 저 사람들은 미쳤습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 연방 의회에서 자신의 오른쪽에 위치한 민주당 의원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 연방 의회에서 열린 국정연설에서 자신의 정책적 성과를 강조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 전역으로 생중계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은 108분간 이어지며 역대 최장 기록을 경신했다.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침묵’으로 항의하거나 연설 중 자리를 떴고, 공화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모두 기립해 박수를 보냈다.



민주당 ‘약 올리기’…작정한 ‘갈라치기’?

붉은 넥타이에 성조기 배지를 달고 입장한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의원들과 셀카를 찍으며 여유를 보였다. 그리고는 연단 맨 앞에 있던 대법관 4명과 악수를 나눴다. 이중 3명은 지난 20일 상호관세를 위법으로 판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을 외면하거나 공개 설전을 벌일 거란 관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민주당 소속 앨 그린(텍사스) 하원의원이 2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 '흑인은 유인원이 아니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그는 연설 시작 3분만에 퇴장당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연단에 선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이 미국의 황금기”라고 말했다. 연설 시작 3분이 채 지나지 않아 ‘흑인은 유인원이 아니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던 민주당 앨 그린 하원의원이 퇴장 조치를 당했다. 쫓겨나는 그린 의원을 향해 공화당은 일제히 ‘미국(USA)’를 연호했다. 그린 의원의 행동은 버락 오바마 부부를 원숭이로 묘사한 영상을 올렸다가 삭제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한 것이었다.

자화자찬성 연설은 주가 상황으로 이어졌고, 트럼프 대통령은 돌연 “의원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부패한 이득을 취하지 못하도록 법안을 통과시키자”며 민주당이 요구해온 법안에 힘을 실었다. 어리둥절한 민주당 의원들이 기립 박수를 보내자, 트럼프 대통령은 “정말 기립 했느냐”며 “낸시 펠로시가 여기에 있다면, 법안을 통과시키도록 일어나 달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 연방 의회에서 열린 국정연설에서 자신의 정책적 성과를 강조하며 공화당 의원쪽을 가리키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주식거래로 이해충돌 논란을 빚은 민주당 소속의 펠로시 전 하원의장을 비난하기 위해 자신 역시 반대해왔던 법안을 의도적으로 꺼냈을 가능성이 있다. CNN은 “법안이 처리되더라도 대통령은 제외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설 중 야당과 설전…“부끄러운 줄 알라”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정말 미국을 약탈하는 부패에 대해서는 미네소타보다 더 놀라운 사례가 없다”며 미네소타 소말리아 커뮤니티에서 발생한 연방 보조금 유용 사건을 언급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 연방 의회에서 열린 국정연설에서 민주당 의원쪽을 가리키며 "저 사람들을 미쳤다"는 원색적 비난을 퍼붓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의 도발에도 미네소타를 지역구로 둔 소말리아 출신의 일한 오마르 의원은 반응하지 않았다. 민주당이 소속 의원 30여명이 연설 보이콧을 선언하자 참석에 대해선 자율에 맡기고 의회 내에선 최소한의 격식을 지키는 의미의 ‘침묵 시위’ 전략을 짜왔기 때문이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들의 범죄 사례를 언급하며 “정부는 불법 이민자가 아닌 미국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면 기립해 달라”고 요청한 뒤 오마르 의원 등을 향해 “기립하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오마르 의원은 좌석에 앉은 채 “당신들이 미국인들을 죽였다”고 외치며 이민자 단속 과정에서 단속 요원들의 총에 맞아 미국인 2명이 사망한 사건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당신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며 맞받아쳤다.
현지시간 24일 워싱턴 워싱턴 연방 의회에서 진행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 민주당 소속 일한 오마르 하원의원이 트럼프 대통령과 공개 설전을 벌였다. AFP=연합뉴스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오마르 의원과의 공개 설전을 거치며 미국인 총격 사망 사건에 대해선 아무런 유감 표명 등을 하지 않고 불리한 주제를 두루뭉술 넘어갔다.



불리한 주제 최소화…관세 3분·엡스타인 0분

이러한 전략은 대법원의 위헌 판결로 약점이 된 관세에 대해서도 유사하게 적용됐다. 현지 언론은 이날 연설에서 관세 정책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구체적 언급이 있을 거라고 예측했지만, 정작 관세 관련 언급은 3분에도 미치지 않았다.
미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잭 휴즈(왼쪽)와 퀸 휴즈(오른쪽)가 동료 선수들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4일(현지시간) 국정연설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원에 판결에 대해 “매우 유감스러운 판결”이라면서도 “관세는 완전히 승인되고 검증된 법적 근거 아래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거의 모든 나라와 기업들이 이미 맺은 협정을 유지하기를 원한다”고 주장했다. 관세 정책에 대한 지지도가 급락한 상황에서 자신의 강성 지지층인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진영의 불안을 다독이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밖에 폭발적 이슈로 떠오른 ‘엡스타인 의혹’은 물론, 취임 이후 “8개의 전쟁을 종식시켰다”는 주장을 반복하면서도 정작 “취임 당일 끝내겠다”고 장담했던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해 6월 폭격을 통해 “완전히 파괴됐다”고 주장했던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재가동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이란은 어떤 상황에서도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원론적 발언을 하는 데 그쳤다.



TV쇼 출신 노하우…‘애국심 마케팅’에 초점

리얼리티 프로그램 스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국정연설에서 애국심을 고취할 수 있는 요소들을 TV쇼 형식으로 구성해 극적인 효과를 최대화했다.
현지시간 24일, 미국 연방 의회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 도중 한국전 참전 용사인 로이스 윌리엄스 대위가 명예 훈장을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연설 시작 무렵 트럼프 대통령이 TV쇼의 사회자처럼 “자 들어오세요 여러분”이라고 외치자 의회 2층 중문이 열리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미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입장했다. 꿈쩍하지 않던 민주당 의원들은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선수단에 기립 박수를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밖에 정책 발표 중간중간 관련 초대자를 직접 소개했고, 특히 초당적 지지를 받는 전쟁 참전 용사들에게 대한 훈장 수여 행사를 반복적으로 배치했다. 여기엔 한국전 참전 용사이자 해군 전투기 조정사인 100세 로이스 윌리엄스 예비역 대위도 포함됐다.
현지시간 24일 미국 워싱턴 연방 의회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 도중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 후보 엔리케 마르케스가 포옹을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밖에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작전에 참여했던 군인과 지난해 텍사스 홍수 때 165명을 구조한 구조 대원에게도 훈장을 수여했다. 연설 중엔 마두로 정권에 억류됐다가 풀려난 엔리케 마르케스 전 베네수엘라 국가선거위원회 부위원장을 가족과 상봉시키는 행사를 직접 진행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 8월 노스캐롤라니아주 한 전철 안에서 노숙자의 공격을 받아 숨진 우크라이나 난민 이리나 자루츠카의 가족을 연설 현장에 불러 위로했다.




강태화([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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