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제일’ 중심이었던 퇴직연금 시장의 지형도가 증시 활황과 맞물려 급변하고 있다. 은행 예금 같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서 상장지수펀드(ETF)등 수익추구형(원리금 비보장)으로 뭉칫돈이 움직이는 ‘머니무브’가 확산하고 있다.
25일 중앙일보가 신한투자증권에 의뢰해 2024년 말부터 올해 1월 말까지 이 회사의 퇴직연금(DBㆍDCㆍIRP) 잔고를 분석한 결과다. 회사가 적립하면 근로자가 직접 운용하는 확정기여형(DC)에서 원리금 비보장 상품의 잔고는 2024년 말 8487억원에서 지난해 말 1조3245억원으로 56.1% 늘었다. 원리금 비보장 상품은 ETF와 펀드ㆍ장외채권 등을 포함한다.
세액공제 혜택을 추가로 받을 수 있는 개인형퇴직연금(IRP)의 경우 원리금 비보장 상품의 잔고가 지난해 말 1조7036억원으로, 1년 사이 2배 가까이(95.6%) 증가했다. 각 기업이 운용 책임을 지는 확정급여형(DB)에서도 변화는 뚜렷했다. DB형에서 수익추구형 잔고는 1년 사이 138.6% 급증했다.
‘머니무브’의 핵심 동력은 ETF다. IRP 내 ETF 잔고는 1조762억원으로 1년 사이 114.5% 급증했다. DC형 내 ETF도 같은 기간 91.2% 늘었다. DCㆍIRP에 담은 상품으로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나스닥, 코스피 등 지수형과 금현물 ETF가 상위권을 차지했다.
올해 들어 코스피 급등세에 힘입어 잔고 증가 속도는 더 빨라졌다. 지난달 IRP의 원리금 비보장 상품 잔고는 전월 대비 17% 증가했다. 특히 ETF는 20.1% 늘었다. 이달 13일 기준 IRP 내 비보장 상품 잔고는 2조708억원으로, 보장형(9108억원)의 2.2배를 넘어섰다. DC·IRP 잔고 중 비보장 상품의 비율은 각각 69%로, 위험자산 한도(70%)를 거의 채운 걸로 해석된다.
신한투자증권 관계자는 “기존에 미국 지수 유형으로 유입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국내 코스피와 반도체ㆍ기술주 위주의 ETF로 몰리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정부의 정책과 반도체 기업의 실적이 퇴직연금의 장기 성장성 제고 측면에서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퇴직연금은 시황에 따라 단기 고수익을 좇는 수단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연령이 낮을수록 주식 등 수익형 자산 비중을 높이고, 은퇴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채권 등 안정자산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정정수 신한투자증권 연금사업부장은 “포모(FOMOㆍ소외 공포)에 따른 추격매수와 계좌 방치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며 “연령 등을 감안하고, 위험자산(주식) 비중이 초과하였다면 이익 실현 후 채권 등을 매수해 장기 수익률을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