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독일이 징병제 부활을 두고 내홍을 앓고 있습니다.
독일 정부는 병력 확충을 위해 2011년 폐지했던 징병제를 다시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요,
작년 12월 초 관련 법안이 연방의회를 통과하자 징병제에 반대하는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베를린을 포함해 전국 약 100개 도시에서 벌어진 징병제 반대 시위에는 주최 측 추산 5만5천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행사를 주도한 건 청소년이 주축이 된 '징병제 반대 학교파업연대(SchulStreik Gegen wehrpflicht)'였습니다.
학교파업연대 대표인 대학생 벨라 브라이트너 씨는 최근 연합뉴스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많은 독일 청소년은 징병제가 자신들의 이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집단행동에 나선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브라이트너 씨는 "학교파업연대가 공식적인 단체는 아니다"라며 "작년 가을 징병제 도입을 위한 입법 움직임이 나타날 때 학생들의 주도로 만들어져 현재는 징병제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라고 소개했습니다.
학교파업연대는 다음 달 5일 전국적인 학교 수업 거부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당일 베를린과 뮌헨 등 90여개 지역의 학생들이 학교에 가는 대신 징병제 반대 시위에 참여하기로 했다는데요,
학생들이 이렇게까지 분노하는 이유는 단순히 입대에 대한 불만 때문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브라이트너 씨는 "독일군은 부대 내 성추행, 극우 단체활동 등과 관련한 문제들이 끊이지 않았다"며 "군대에 다녀온 이들 중에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같은 후유증을 겪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청년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도 크다고 브라이트너 씨는 전했습니다.
그는 "징병제가 다시 도입되면 그런 결정을 한 정치인의 자녀가 아닌 평범한 가정의 자녀들이 군대에 가거나 전쟁에 참여해야 할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징병제는 소수의 이익이지 다수, 특히 대다수 젊은이의 이익은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청년층의 반발에도 독일 정부는 개정된 병역법을 발판으로 징병제 재도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선 현행 모병제를 유지하면서 현재 18만3천명 수준인 병력을 2035년까지 26만명으로 늘리는 게 목표인데 목표를 채우지 못할 경우 최소 6개월의 의무복무를 도입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만 18세 이상을 대상으로 병역 의사와 능력을 파악하기 위한 온라인 설문을 진행합니다.
내년부터는 18세 남성 모두가 신체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독일 정부는 러시아의 위협과 미국의 방위비 증액 압박 등 달라진 안보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병력 확충을 포함한 군비 강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브라이트너 씨는 지난 두 번의 세계 대전에서 보듯이 방어를 명분으로 한 독일의 무장 강화가 결국 침략 전쟁으로 이어진 점을 지적하며 "군사화는 결국 전쟁 준비를 위한 핑계"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역사를 돌아보면 대부분의 경우 군비 지출이 늘면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도 높아졌다"며 "협상과 평화 이니셔티브가 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평범한 시민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며 "1·2차 세계대전의 참상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기획·구성: 고현실
편집: 김선홍
영상: 로이터·AFP·인스타그램 schulstreikgegenwehrpflicht·유튜브 WW2 German Chronic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