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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대첩’의 사용 조건

중앙일보

2026.02.25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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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대첩’ ‘혼례대첩’ ‘걸그룹 대첩-가문의 영광’ 등 TV에서 방영된 드라마 및 예능 프로그램명으로 ‘대첩’이 종종 사용되곤 한다. ‘살수대첩’ ‘한산도대첩’ ‘명량대첩’ 등처럼 큰 전쟁명으로 ‘대첩’이 쓰이다 보니 프로그램 이름에 ‘대첩’을 붙이면 뭔가 규모가 거대하고 비장한 대결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어서인 듯하다. 그러나 ‘대첩’이 적절한 쓰임인지는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살수대첩’은 고구려 영양왕 23년(612)에 고구려와 중국 수나라가 살수에서 벌인 큰 싸움으로, 수나라의 양제가 고구려를 정복하려고 200만 명의 대군을 인솔하고 쳐들어왔으나 을지문덕 장군이 지휘한 고구려 군사가 살수를 건너온 수나라의 별동대 30만5000여 명을 몰살시킨 전쟁이다.

‘한산도대첩’과 ‘명량대첩’은 조선 선조 25년(1592)과 선조 30년(1597)에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이 한산도 앞바다와 명량에서 왜선(倭船)을 쳐부숴 크게 이긴 싸움을 이른다.

대첩(大捷)은 ‘큰 대(大)’ 자와 ‘이길 첩(捷)’ 자로 이루어진 낱말로, ‘크게 이김. 또는 큰 승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살수대첩’ ‘한산도대첩’ ‘명량대첩’에서 알 수 있듯 ‘대첩’은 이미 크게 이긴 전쟁을 의미한다.

따라서 방송 프로그램명으로 출연자들 간에 대결하는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나타내려 했다면 ‘대첩’보다 ‘대전’ ‘전쟁’ ‘대결’ 등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대첩’은 이미 ‘커다란 승리’라는 결론이 난 전쟁이기 때문에 누가 우승할지 모르는 출연자들 간 경쟁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한식대전’ ‘혼례전쟁’ ‘걸그룹 대결’ 등이 적절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김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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