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소원 도입을 둘러싼 법원·헌법재판소 간 갈등이 심상찮다. 그간 ‘재판소원은 4심제라 안 된다’던 전·현직 헌법재판소장들이 집권여당 편에 가세했다. 선출권력(대통령·국회)과 비선출 권력(사법부) 간 갈등이 사법부를 대표하는 두 헌법기관의 전쟁으로 비화했다는 점에서 삼권분립의 위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대법관 출신인 김상환 헌재소장은 법관일 땐 일관되게 대법원을 최종심으로 하는 3심제가 무너진다고 반대했었다. 그러다 헌재소장 지명 후 지난해 7월 인사청문회 때 “개헌을 통해 도입하는 게 선명하고 논란의 여지가 없겠다”고 하더니 취임 후 “기본권 보호 측면에서 이상적으로 입법자(국회)가 해결할 과제”라고 적극 찬성으로 선회했다. 압권은 1988년 헌법재판소법 제정 당시 실무위원으로 재판소원에 반대했던 이강국 전 헌재소장이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38년 전 제 의견이 잘못됐다고 반성한다”며 “대법원이 최고 법원이란 건 법원 내에서이지 다른 국가기관에 주장할 순 없다”고 입장을 바꾼 일이다. 헌법재판관 9명 중 소장을 포함한 6명을 대통령·국회가 임명하는 정치적 한계가 있는데도 법률가로서 평생 소신을 뒤집는 걸 정무감각이 뛰어나다고만 할 수는 없다.
헌재 수장들 ‘재판소원’ 소신 뒤집기
민주당 법원 재편 계획에 동참한 꼴
‘사법 독립’ 재설계하려면 개헌 필요
더불어민주당이 재판소원을 위시해 대법관 증원, 법 왜곡죄(부당판결 판사처벌법) 도입 등 사법 3법 도입을 한꺼번에 추진하는 건 한국판 ‘법원 재편 계획(court-packing plan)’이다. 이 같은 사법부 재편이 지난해 5월 1일 이재명 대통령 선거법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환송 선고 이튿날부터 추진된 걸 국민이 다 안다. 두 전·현직 헌재 소장이 임기 1년3개월 남은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전방위 공세에 가담해 사법부 독립에 역주행한 모습은 볼썽사납다.
헌법이 국회·정부·법원의 삼권이 견제·균형을 이루도록 한 건 1948년 유진오 박사의 제헌헌법 초안부터 대한민국 국체에 대한 그랜드 디자인이었다. 독재자 출현, 군부 쿠데타를 우려한 때문이었다. 정부 형태는 이승만 당시 제헌국회 의장의 비토로 막판에 내각제가 대통령제로 바뀌었지만 ‘사법권은 법원이 행한다’ ‘최고 법원은 대법원’ 등 사법부 부분은 초안 그대로 제정·시행됐다. 당시 ‘대법관 5인, 국회의원 5인’으로 위헌법률 심판을 담당하는 헌법위원회를 두도록 했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않은 채 폐지됐다가 1987년 헌법을 통해 상설 헌법재판소로 출범했다. 제헌헌법 때부터 재판에서 적용 법률의 위헌 여부가 문제가 될 경우 법원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도록 했을 뿐 이외엔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지 않도록 했다.
87년 민주화 이후 또다시 삼권분립 설계를 무너뜨리려 한 데 분명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원죄가 있다. ‘장기 독재’를 계획했든, 안 했든 간에 그는 국회에 무장군인을 투입해 입법권을 마비·정지시키려는 ‘국헌 문란의 폭동’을 일으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대통령이 계엄선포권을 도구로 또 다른 선출 권력인 국회를 위시해 삼부를 발아래에 두려 했다. 국회 다수 여당이 강행 수순을 밟고 있는 사법 3법 역시 ‘3심제 재판’ ‘재판의 독립’ 등 건국 때부터 설계한 사법권의 본질적 영역을 변경하는 것이다. 입법부가 사법부의 분명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토론·숙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밀어붙이는 것 역시 현직 대통령의 내란 폭동과 마찬가지로 우리 헌법의 아버지들이 예상한 일이 아니다.
물론 헌법의 삼권분립이란 그랜드 디자인 역시 재설계할 수 있다. 민주주의 제도는 시대 변화와 사회 요구를 수용해 진화하지 못하면 무너지기 십상이다. 재판을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선출 권력의 폭주를 견제하는 민주주의 마지막 방벽인 사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대수술해야 마땅하다. 단, 국민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게 개헌 절차다. 여의도 정치권이 늘 하듯 ‘헌재는 우리 편, 법원은 너희 편’식 갈라치기 우격다짐으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