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석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25일 상법 개정안 의결을 시작으로 일주일에 걸친 입법 독주에 돌입했다.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 ‘3차 상법 개정안’을 의결한 민주당은 곧바로 ‘법왜곡죄’(형법 개정안)를 상정했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법왜곡죄 저지를 위해 시작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24시간 뒤 국회법에 따라 강제 종료하고 26일 오후 법왜곡죄를 의결할 방침이다.
이후에도 여당의 법안 단독 처리는 매일 예고돼있다. 27일 재판소원법(헌법재판소법 개정안), 28일 대법관 증원법(법원조직법 개정안), 3월 1일 국민투표법 개정안, 2일 광주·전남 행정통합특별법 제정안, 3일 지방자치법 개정안 등 임시국회 회기가 끝나는 3일까지 최소 ‘1일 1법안’이 민주당 주도로 일방 처리된다.
이번에 의결되는 법안들 가운데 핵심은 사법부의 힘을 빼는 이른바 ‘사법 3법’(법왜곡죄 도입, 재판소원법, 대법관 증원법)이다. ▶법리를 왜곡한 판사·검사를 10년 이하 징역 또는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게 하는 법왜곡죄 도입 ▶확정된 법원 판결을 헌법재판소에서 심리해 취소할 수 있게 하는 재판소원 제도 도입 ▶14명인 대법관 수를 26명으로 늘리도록 한 대법관 증원법 등이 골자다.
전국 법원장들은 25일 오후 2시부터 대법원 청사에서 박영재 법원행정처장 주재로 4시간 45분에 걸쳐 회의를 열고 “충분한 공론화와 숙의 없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현 상황에 대해 심각한 유감”이라는 내용의 결의안을 발표했다. “사법제도의 근본적 개편은 돌이키기 어려운 중대한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이유다. 법안 내용에 대해서도 “법왜곡죄는 구성 요건이 추상적이어서 처벌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되고, 재판소원은 재판 확정의 실질적 지연으로 인한 국민 피해가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회의에서 한 법관은 “사법 후진국으로 갈 수도 있는 길목이라고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시기”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 국무조정실 내 추진단을 만들어 검토·조율하는 ‘검찰개혁’과 달리 사법 3법이 너무 급속하게 진행된다는 점을 들어 “검찰보다 못한 취급”이라며 불쾌감을 표하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민주당은 2월 안에 사법 3법을 의결한다는 방침이 확고하다. 법안이 모두 통과되면 삼권분립의 무게추는 정부·여당으로 쏠릴 전망이다. 이미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까지 힘이 빠지기 때문이다. 범여권 190석에 육박하는 압도적 입법 권력과 행정 권력을 거머쥔 정부·여당을 이제 견제할 주체는 사실상 존재하지 못한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행정·입법 권력을 다 가진 이들이 사법부마저 흔들면 독선으로 내달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희균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헌재의 재판은 정치 상황에 따라서 재판 결과가 많이 달라질 수도 있다”며 “결국 정치가 사법부를 좌지우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도는 허상이라는 여당 대표의 인식, 일방 독주에 열광하는 강성 지지층은 민주당이 절대권력을 향해 질주할 수 있는 동력이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취임 후 주변에 “지방선거는 어차피 51대 49 싸움이다. 우리 당을 찍어줄 이들을 투표소에 확실히 이끌면 우리가 이긴다”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한다. 2022년 지방선거 투표율(50.9%)이 같은해 대선 투표율(77.08%)이나 2년 뒤 총선 투표율(67.0%)에 비해 현저히 낮은 만큼, 지지층 결집 만으로도 충분히 지방선거를 승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5일 X(옛 트위터)에서 “민주당은 야당의 극한투쟁 등 여러 장애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맡긴 일을 최선을 다해 잘 하고 있다. 개혁입법은 물론 정부지원에도 부족함이 전혀 없다”며 입법 독주에 힘을 실어줬다.
이같은 여권 독주를 견제해야 할 제1야당 국민의힘은 ‘윤어게인’으로 자멸하며 오히려 민주당에 탄탄대로를 깔아주고 있다는 평가다. “기본적으로 과점 시장인 한국 정치가 야당의 기능 상실로 민주당 독점시장이 됐다”(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는 해석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비관론이 팽배하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4일 필리버스터 첫 주자로 나서 “저희가 국민으로부터 많이 멀어져 있다. 이재명 정부의 정책, 여당에서 일방 추진하는 법안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대구도 우리가 먹는다. 17개 광역단체장 중 경북을 제외한 16개 지역을 이길 수 있다”(박지원 의원)는 민주당과는 정반대 풍경이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는 25일 국민의힘의 상임위 보이콧 투쟁에 대해 “권한 남용이 계속되면 상임위 배분 문제도 원점에서 고려하겠다”고 국민의힘을 압박했다.
정치학자인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사법 3법 같은 경우는 사법부 독립과 직결된 주요 법안이기 때문에 충분한 숙의가 필수적”이라며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여당과 당내 싸움에 몰두하는 야당 때문에 삼권분립이 뿌리채 위기에 몰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