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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만들라 한 적 없는데"…제주올레 낳은 20년 전 '위대한 오해'

중앙일보

2026.02.25 12:00 2026.02.25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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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의 레저터치
2006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찍은 기념사진. 왼쪽이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고 오른쪽이 잔느 케서린 헤니다. 이 사진 한 장으로 20년 만의 상봉이 성사됐다. 사진 제주올레
2006년 10월 13일
산티아고 순례길(카미노) 종점 대성당을 약 40㎞ 앞둔 작은 마을 멜리데 어귀. 한국인 순례자 수키(Sooky. 당시 49세)는 길가 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던 영국인 순례자 헤니(당시 54세)를 만났다. 두어 시간 전 카페에서 만났던 사이여서 둘은 나무 그늘에 나란히 앉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문어 요리 잘하는 식당을 찾아가 점심을 먹었다. 순례를 거의 마친 수키의 카미노 찬양이 이어지자 헤니가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참 행복했고 많은 것을 얻었어. 그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주자. 우리,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각자의 길을 만들자. 너는 너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어때?”

수키는 카미노를 걷는 내내 카미노 같은 트레일이 우리나라에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길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날 수키는 결심했다. ‘내 고향 제주도로 내려가 나만의 카미노를 만들자.’

20년 전의 수키가 서명숙, 그러니까 한국에 걷기여행 열풍을 몰고 온 제주올레의 이사장이다. 2006년 매일매일 쫓기는 일상에 진저리가 났던 수키는 그해 9월 10일 카미노 프란세스(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코스) 종주에 나섰다. 약 808㎞ 길이의 순례가 끝난 건 10월 15일이었다. 서명숙은 이듬해 제주도로 내려가 올레길을 내기 시작했다.

2026년 2월 20일
지난 20일 제주올레 6코스에서 촬영한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과 잔느 캐서린 헤니의 사진. 20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찍은 사진을 재현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06년 스페인의 카미노에서 만났던 헤니와 수키가 한국의 올레길에서 만났다. 카미노에서 헤어지고 난 뒤 20년만의 만남이다. 두 순례자는 제주올레 6코스를 함께 걸으며 20년 전처럼 길가 나무에 기대 사진도 찍었다. 영국인 순례자는 말했다.

“수키가 이 길을 냈다고? 믿어지지 않는다. 정말 위대한 일을 했다. 올레길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모이는 걸 보고 수키가 ‘인간의 길(Human Trail)’을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엄청나게 놀랐고 감동했다.”

20년 전 카미노를 걷기 전 헤니는 영국의 잘나가는 오페라 연출자였다. 2004년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훈장도 받았다. 그러나 그도 지쳤다. 2006년 스페인으로 날아가 생전 처음 장거리 트레일에 도전했고, 끝내 완주에 성공했다.

카미노는 그의 인생도 바꿨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작은 마을에 들어가 공동체 운동을 시작했다. 특히 이민자와 집시 아이들의 인권 보호와 교육 활동에 매진했다.
잔느 캐서린 헤니가 손수 제작한 티셔츠. 티셔츠에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과의 인연을 새겼다. 두 사람의 이름, 산티아고 순례길과 제주올레 표식, 두 사람이 대화했던 식당의 대표 메뉴 문어 등을 넣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헤니도 유난히 활달했던 수키를 잊지 않았다. 순례를 마친 뒤 연락했으나 답이 없었다. 긴 세월 잊고 지내다가 이태 전 가을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18일 제주올레 초청으로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20년 전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두 사람의 이름과 문어 그림 등을 새긴 티셔츠를 만들었고, 옛날 카미노를 걸을 때 신었던 신발도 갖고 왔다.

위대한 오해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과 잔느 캐서린 헤니가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서 제주올레 완주자 종을 치는 포즈를 취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년 전 한국으로 돌아온 수키는 헤니를 찾아 사방팔방 수소문했다. 그에게 자신이 만든 길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헤니가 건네준 연락처를 잃어버렸다. 수키가 기억하는 건 ‘영국인 헤니’라는 이름뿐이었다.

이태 전 9월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멜리데 어귀 나무 그늘에서 촬영한 사진을 얼굴 인식 인공지능에 돌렸더니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한 지역 잡지에 실린 사진이 검색됐다. 그 사진으로 마침내 헤니를 찾아냈다. 여태 헤니를 찾을 수 없었던 이유도 알았다. 수키가 기억하는 헤니는 이름이 아니라 성(姓)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잔느 캐서린 헤니(Jeanne Katherine Henny)다. 수키는 헤니가 자신에게 연락을 취했던 것도 모르고 있었다.

20년 만에 마주한 두 사람은 서로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느라 바빴다. 수키가 먼저 물었다. “나는 네 말대로 내 고향에서 길을 만들었는데, 너는 왜 고향으로 안 돌아갔니?” 그러자 헤니, 아니 잔느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너에게 길을 만들라고 한 적이 없어. 너의 길을 찾아서 가라고 했을 뿐이야. 나도 길을 만들 생각이 없었어. 영국에는 이미 길이 정말 많거든. 그래도 좋아. 나는 스페인에서 나의 새로운 길을 찾았어. 어려운 아이들에게 새 길을 알려주고 있어. 수키, 너도 너의 길을 찾았잖아.”
잔느 캐서린 헤니의 신발. 20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신었던 신발을 갖고 와서 제주올레 6코스를 걸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수키는 잔느가 말한 “길(way)”을 ‘걷기여행길(Trail)’로 오해했었던 것 같다. 카미노가 준 축복에 흠뻑 빠져있을 때였으니까. 오해였어도 괜찮다. 그 덕분에 제주올레가 만들어졌으니까.

전체 437㎞의 제주올레는 지난해 기준 완주자 3만1169명을 기록했다. 누적 탐방객은 1300만 명이 넘고, 제주올레로 연간 6630억원의 지출이 발생한다. 세상의 어떤 위대한 것은 오해에서 비롯된다. 28일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서 두 사람의 토크 콘서트가 열린다.



이 기사는 구글의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중앙일보가 만든 AI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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