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협상을 앞두고 미국에 “나치식 선전 기법을 이용하고 있다”며 맹비난을 퍼붓는 이란 정권이 ‘고위층 자녀의 서방 생활’ 논란에 휘청이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한편, 내부에선 엘리트층의 위선 의혹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5일(현지시간) 최근 이란에서 집권 엘리트들이 국내 경제난과 시위 유혈 진압 속에서도 국가 자산을 활용해 자녀들의 서방 생활을 지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뻔뻔한 위선(brazen hypocrisy)”이라는 비판이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비판의 중심에는 알리 라리자니 최고국가안보보좌관이 있다. 그는 지난 1월 이란을 휩쓴 시위에 대한 유혈 진압 과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슬람 공화국 체제의 강경 노선을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특히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는 그에게 미국과의 전쟁 가능성에 대비한 준비를 총괄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정작 그의 딸은 미국에, 조카들은 영국과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전직 대통령 친인척이 영국에서 근무하고, 고위 인사의 자녀가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스쿨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 에너지 장관의 딸이 미국에 거주하는 사례 등이 거론된다.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출신이자 한때 테헤란 시장을 지낸 대통령 후보의 장남이 호주에 거주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한 이란 혁명수비대(IRGC) 관계자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정권 인사의 자녀와 친척 약 4000명이 서방 국가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논란은 지난해 말 경제난에 허덕인 상인들의 거리 시위에서 최근 반정부 시위로 이어지는 상황과 맞물려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지난달 정부의 시위 진압 과정에서 수천 명이 사망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으며, 정확한 사상자 수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았다. 이란 정부는 당시 전국적인 인터넷과 통신망을 5일가량 차단하며 정보 확산을 통제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캄비즈 가푸리 이란 인권운동가는 가디언에 “그들은 이란을 국민에게는 지옥으로 만들고, 자녀들은 서방으로 보내 행복하게 살게 했다”며 “만약 이란 당국자 자녀들을 (이란으로) 돌려보낼 지에 대한 국민투표가 있다면 90% 이상이 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렉스 바탄카 워싱턴 중동연구소 이란 담당자도 “문제의 핵심은 위선”이라며 “정권이 설파한 가치와 엘리트 자녀들의 삶 사이 괴리가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전 외무장관 아들의 미국 추방을 촉구하는 온라인 청원도 이어지고 있다. 26일(한국시간) 기준 지지를 표한 사람은 1109명에 달한다.
고위층 자녀의 서방 생활은 미국과의 외교·안보 갈등과도 연결된다. 앞서 미국은 이란의 반정부 시위 이후 “이란 고위 관리와 그 가족의 미국 체류 특권을 박탈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집행 방안은 알려지지 않았다. 결국 이들이 “정보 수집에 가치가 있을 수 있다”고 여기는 서방 정보기관 입장에서 일괄 추방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핵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이란 간 공방은 더욱 거칠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국정연설에서 “나는 결코 세계 최대 테러 후원국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며 강경 입장을 고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다음 날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X(옛 트위터)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탄도미사일에 대해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며 “‘거짓말을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는 나치 요제프 괴벨스의 선전 법칙을 이용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미국과 이란은 2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3차 핵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앞선 두 차례 회담은 오만의 중재로 이뤄졌으며, 이번 협상에서 이란은 농축 권리의 상징적 인정과 고농축 우라늄 비축분 처리 문제 등을 의제로 제시할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