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13개 의혹을 받는 김병기 무소속(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6일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에 처음 출석했다. 지난해 11월 9일 김 의원의 전 비서관이 김 의원의 각종 의혹이 담긴 진술서를 서울 동작경찰서에 제출한 지 110일 만이다. 김 의원 관련 사건들의 발생 시점부터 적게는 수개월에서 많게는 수년이 지났고, 주요 물증이 있을 것으로 추정됐던 대형 금고의 행방도 묘연하다. 경찰이 이날 조사에서 유의미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을지, 어떤 진술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따라 향후 수사 성패가 갈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는 이날 오전 9시부터 김 의원을 불러 조사하고 있다. 김 의원은 출석에 앞서 “성실하게 조사를 받고 제기된 모든 의혹과 음해를 해소하고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김 의원은 ‘대형 금고에는 어떤 게 들어 있었느냐’는 질문에 “금고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경찰은 지난달 김 의원의 전 비서관으로부터 “김 의원이 중요 물품을 보관하는 금고가 있다”는 진술을 받아 형사기동대까지 투입하며 해당 금고 확보를 시도했다.
경찰은 우선 김 의원을 상대로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부터 따져 묻고 있다. 김 의원 측에 돈을 건넨 의혹을 받는 전직 동작구의원 전모씨와 김모씨가 경찰 조사에서 내용 전반을 인정하면서 의혹이 구체화 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2020년 김 의원의 배우자 이모씨에게 총선 자금용 뇌물 3000만원을 건넸다가 수개월 뒤 돌려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전씨와 김씨가 3000만원의 출처에 대해 “집에 보관하고 있던 돈”이라고 진술했고, 이들의 현금 인출 내역 등 금융 기록에서도 경찰이 별다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 의원 배우자 이씨도 지난달 9일 경찰에 “돈을 요구한 적도 받은 적도 없다”고 진술했고, 김 의원이 직접 개입한 정황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사건 발생이 약 6년이 지나 물적 증거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서, 피의자 진술까지 엇갈리는 셈이다.
뇌물 수수 의혹 다음으로 조사가 많이 이루어진 것은 배우자 이씨의 동작구의회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과 김 의원의 관련 수사 무마 의혹이다. 이씨는 2022년 7~9월 사이 조진희 전 동작구의원의 업무추진비 약 159만원을 횡령해 식사 등을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이씨(지난달 22일)와 조 전 구의원(지난 9일)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또 경찰은 김 의원의 부탁을 받은 동작경찰서가 수사를 무마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동작경찰서를 압수수색하고 전 동작경찰서장 A씨를 피고발인 신분으로, 당시 동작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장 B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다.
A씨와 B씨는 경찰에 “수사를 무마한 적이 전혀 없고, 내사 결과 이씨를 무혐의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로 항변했다고 한다. 또 경찰은 업무추진비가 사용된 일부 식당을 찾아 증거 확보에 나섰지만, 이미 3년 이상 시간이 지나 식당들 상당수가 폐쇄회로(CC)TV 영상이나 결제 내역을 보관하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의원이 차남을 가상자산 관련 회사에 입사시키려 빗썸과 두나무 측에 인사 청탁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경찰이 빗썸을 압수수색(24일)하고, 차남을 소환조사(25일) 했다. 다만 차남은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차남 측 변호인은 25일 기자들과 만나 “정상적인 방법으로 빗썸에 채용이 됐고, 숭실대학교 부정 입학도 없었다”며 “모두 소명했고, 경찰 수사 결과가 잘 나올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경찰의 늦장 수사로 인해 김 의원의 혐의 입증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동작경찰서는 지난해 11월 관련 진술서를 확보하고서도 수사에 착수하지 않다가 지난달 4일에야 서울경찰청에 사건을 이첩했다. 또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는 김 의원이 민주당 원내대표직을 내려놓거나 탈당을 한 이후에야 이루어졌다. 이에 경찰은 김 의원 관련 수사 과정에 대한 문제점도 자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경찰은 27일에도 김 의원을 소환할 계획이다. 김 의원은 이외에도 ▶항공사 숙박권 수수 ▶쿠팡 소속 전 보좌진 인사 불이익 요구 ▶대형병원 진료 특혜 등 13개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입증이 간단치 않아 3월 중 추가 소환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