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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유화책에도 "한국은 영원한 적"…난감해진 李 대북정책

중앙일보

2026.02.26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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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20~21일 노동당 제9차대회(19~25일, 평양) 제8기 당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에서 ″한국과 잇닿아있는 남부국경선을 가급적 빠른 기간 내에 요새화하고 경계체계와 화력체계들을 보강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조선중앙TV가 26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9차 당대회 결산에서 남측을 “철저한 적대국이며 영원한 적”으로 규정하고 “현 집권 정권이 겉으로 표방하는 유화적인 태도는 서투른 기만극이자 졸작”이라고 밝혔다. 미국과의 마찰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유화적인 손짓을 보내고 있는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김정은이 직접 선을 그은 셈이다. 이에 따라 9·19 남북군사합의 복원 등 정부의 대북 정책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커졌다.

26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20~21일 9차 당대회 ‘사업 총화 보고’를 통해 강도 높은 대남 적대 메시지를 발표했다. 김정은은 한국에 대해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이라고 했다. 이어 “남부 국경 지역의 모든 연계통로와 공간을 물리적으로 완전히 차단하기 위한 법률적, 행정적 조치들을 연이어 강구”했다고 밝혔다. 이는 ‘적대적 두 국가’기조를 법제화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김정은은 “적국이 우리에 대하여 무엇을 주장하고 무엇을 하려고 시도하는 그 자체가 도전”이라면서 남측에 “우리와의 모든 것을 단념하고 우리를 건드리지 않는 것”을 요구했다. 그는 또 “핵보유국의 문전에서 실행되는 한국의 부잡스러운 행동이 우리의 안전 환경을 다(해)쳐놓는 행위로 인정되는 경우 우리는 임의의 행동을 개시할수 있다”면서 “한국의 완전 붕괴 가능성은 배제될수 없다”고 위협했다. 대남 선제 타격을 위한 법적 근거와 군의 작전수행절차를 마련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은의 이런 대남 메시지는 정부가 추진 중인 한·미 연합연습 실기동훈련(FTX) 축소, 비행금지구역 복원 등 대북 유화 드라이브에 대놓고 찬물을 끼얹은 게 됐다. 앞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설 연휴 마지막 날(18일) 브리핑을 자처해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을 포함해 기존 9·19 군사합의 일부 복원을 선제적으로 검토·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대북 구상에 차질 불가피

이에 따라 9·19 군사합의의 비행금지구역 복원 등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려던 정부 구상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앞서 정동영 장관이 남측의 민간인 무인기 침투 사태에 대해 공개 유감 표명을 했고, 이달 중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현재 부장)이 이를 “높이 평가”한다는 담화를 연달아 냈다. 정부 내에선 이를 ‘북측의 화답’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있었고, 대북 유화 정책을 중시하는 ‘자주파’의 목소리에 급격히 힘이 쏠렸다고 한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26일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에서 열린 접경지역 평화안전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비행금지구역 복원에 대해선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 18일 진영승 합참의장과의 공조 통화에서 “한·미의 대비태세를 제약할 수 있다”며 한국 측에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는 공중완충구역(비행금지구역) 설정 조항을 통해 군사분계선(MDL) 남쪽으로 동부 지역은 최대 40㎞, 서부지역은 20㎞까지 고정익·회전익·무인기 등의 비행을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찰 자산에서 북한보다 월등히 앞선 한·미의 가드만 내리는 격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내달 자유의 방패(FS) 한·미 연합연습 기간 실기동훈련을 “대폭 축소하거나 아예 하지 말자”는 목소리도 정부 안에서 힘을 얻었다. 또 당 대회 중인 북한을 고려해 연합연습 시행 계획에 대한 한·미 공동 발표를 위기관리연습(CMX)이 시작한 3월 초로 미루자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나 미 측이 난색을 표하며 한·미는 연합연습 기간 실기동 훈련의 규모와 횟수를 확정하지 못한 채 이달 25일 공동 발표를 강행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적대 감정을 순식간에 없앨 수는 없다”면서 “우리 옛말에 한술 밥에 배부르랴, 이런 얘기가 있다.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안타깝다”면서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평화·공존 정책을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엔 "현 지위 존중"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3일 노동당 제9차대회 4일회의가 2월 22일에 진행됐다고 보도했다.대회에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당 총비서로 재선됐다고 통신은 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은 이날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를 향해선 “만일 미국이 헌법에 명기된 우리 국가의 현 지위를 존중한다면 미국과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재차 밝혔다. 이는 북한이 헌법에 명시한 핵보유국 지위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미국과의 정상회담에 열려있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김정은은 또 “우리의 핵은 어떤 경우도 흥정할 수 없게 된 불퇴의 선”이라며 “그 누구도 정치적이며 물리적인 위헌 행위”를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는 비핵화 시도 자체가 헌법 개정 사안이라며 타협의 대상이 아니란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9차 당대회는 향후 5년 간의 대외 노선을 확정한다는 의미도 있는 만큼 북한이 향후 전향적으로 북·미 대화를 타진할 가능성도 상당하다. 실제 김정은은 사업 총화에서 정상외교 확대 가능성을 내비쳤는데, “국가의 대외 활동에 대한 당 중앙의 직접적 관여는 필수적인 요구”라면서다.

김현욱 세종연구소 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북한이 원하는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듯한 인상을 주면,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의 즉각적인 신뢰 약화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핵 운용수단 확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5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제9차대회 기념 열병식 주석단에서 연설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이번 당대회 메시지가 전반적으로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 시정 연설을 통해 밝힌 대미·대남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군사 부문 역시 핵 증강 노선을 제외하면 모호하게 표현됐다.

김정은은 “핵무기 수를 늘리고 핵운용수단과 활용공간들을 확장”할 것이라며 '새로운 국방력 강화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지상·수중발사형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인공지능(AI) 무인공격체 ▶위성공격용 특수자산 ▶적의 지휘중추를 마비시키기 위한 강력한 전자전 무기체계 ▶진화한 정찰위성 등이 포함됐다.

다탄두(MIRV) 기반의 고체연료 ICBM 화성-20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위성 요격 무기(ASAT), 전자전 무기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위성 요격무기는 한국의 우주 감시·정찰자산(ISR) 능력이 향상됨에 따라 이를 무력화하는 무기를 개발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남측을 겨냥한 “600㎜방사포와 신형 240㎜방사포 체계들, 작전전술미사일”에 대한 연차별 실전 배치 계획도 세운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열병식에서 무장 장비는 식별되지 않았는데, 북한에 대외 환경이 유리하게 조성되면서 무력시위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열병식 주석단에는 주애가 함께 등장했다.



이유정.정영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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