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인환 기자] 축구고 뭐고 사람부터 살고 봐야 할 판이다. 역대 최대 규모의 수배령이 내려졌던 마약왕 ‘엘 멘초’의 사살 이후 멕시코 전역이 피의 보복으로 물들고 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개막을 단 4개월 앞두고 개최국 멕시코가 사실상 '준전시 상태'에 돌입했다. 멕시코 군이 CJNG(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의 수장 네메시오 오세게라를 사살한 지 이틀 만에 카르텔 조직원들이 멕시코 32개 주 중 20개 주를 장악하고 무차별 보복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은 참혹하다. 과달라하라를 포함한 주요 도시에서는 도로가 차단되고 차량과 상점이 불길에 휩싸였다. 이번 사태로 최소 74명이 사망했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지만, 현장에서는 "마치 전쟁터에 있는 것 같다"는 주민들의 절규가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 일본 자동차 기업 혼다는 과달라하라 공장 가동을 중단하며 몸을 사릴 정도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번 폭동의 중심지인 과달라하라가 한국 대표팀에는 중요한 장소라는 점이다. 인근에 베이스캠프를 차린 홍명보호는 조별리그 1, 2차전을 폭동이 일어나고 있는 한가운데인 에스타디오 아크론에서 치러야 한다.
사실상 한국 선수단은 물론, 원정 응원에 나설 한국 축구 팬들의 안전이 카르텔의 보복 테러 위협 때문에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에스타디오 아크론은 한국 경기 외에도 K조 콜롬비아의 조별리그 2차전, H조 3차전인 우루과이와 스페인의 조별리그 3차전도 예정된 곳이다. 당장 3월 말에는 이곳에서 대륙별 플레이오프 두 경기를 치러야 한다.
이런 아비규환 속에서도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의 발언은 기름을 부었다. 그는 지난 25일 AFP 와의 인터뷰에서 “매우 안심하고 있다. 모든 것이 좋다. 대회는 장관이 될 것”이라며 현지의 참혹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꽃밭’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개최 도시 중 하나인 과달라하라가 카르텔 보복의 핵심지임에도 불구하고, 흥행과 개최 강행만을 외치는 FIFA의 태도에 전 세계 축구 팬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는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노리는 홍명보호에게도 직격탄이다. 앞서 한국 축구대표팀은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멕시코 현지의 불안한 치안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실제로 과거 멕시코 원정이나 전지훈련 당시에도 대표팀은 사설 경호원을 대동하고 외부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는 등 삼엄한 경비 속에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홍명보 감독 역시 그간 "선수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북중미 현지의 치안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해왔다.
하지만 현재 멕시코의 상황은 단순한 ‘우범 지대’ 수준을 넘어섰다. 카르텔이 국가 공권력을 상대로 전면전을 선포한 상황에서, 과연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단이 안전하게 경기를 치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멕시코와 아이슬란드의 친선 경기가 열리는 케레타로 주 역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이미 지난 일요일 이곳에서는 폭력 사태로 리그 경기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멕시코 정부와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은 "아무런 위험이 없다"며 팬들을 안심시키려 애쓰고 있지만, 불타버린 차들이 가득한 시내로 인해 불안감이 가증되고 있다.
과달라하라에서는 우루과이와 스페인의 '빅매치'를 포함해 조별리그 4경기가 열릴 예정이다. 또한 3월 말에는 월드컵 본선행 막차를 타기 위한 플레이오프 토너먼트까지 예정되어 있다.
홍명보호가 만약 이 지역에서 경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전술적인 준비보다 '생존'을 먼저 걱정해야 할 처지다.
FIFA와 멕시코 정부가 경제적 논리에 매몰되어 "안전하다"는 주문만 외우는 사이, 축구장 밖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총성이 울려 퍼지고 있다.
선수와 팬들의 목숨을 담보로 강행되는 월드컵이 과연 인판티노의 말처럼 '장관'이 될 수 있을까. '피의 월드컵'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전 세계 축구계를 짓누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