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파반느’(20일 공개)는 각기 다른 이유로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가던 미정(고아성), 경록(문상민), 요한(변요한) 세 청춘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원작이다.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추녀’를 내세워 외모 지상주의, 비정한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했던 원작과 달리, 영화는 세 인물의 치유와 성장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24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이종필(46·사진) 감독은 “20대가 끝날 무렵 소설을 봤는데 내 이야기 같아 몰입했다”며 “10년 전부터 이 소설의 영화화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파반느’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 ‘탈주’(2024) 등을 연출하며 흥행 감독으로 성장한 이 감독의 첫 멜로 영화다.
작품을 준비하던 그에게 가장 큰 고민은 ‘원작의 핵심 설정인 못생긴 여자 미정을 어떻게 형상화하는가’였다.
고민은 배우 고아성을 만나고서 해결됐다. 어떤 여배우도 맡기 꺼려할 역할이지만, 고아성은 스스로 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제가 미정의 눈을 잘 표현할 수 있다”는 말로 이 감독에게 확신을 줬다.
영화 속 미정의 얼굴은 그리 못나지 않았다. 못난 것은 사람들의 조롱 섞인 시선에 주눅 들어 있고, 누군가를 사랑할 자신이 없는 못난 마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정처럼 사랑할 자신이 없는 못난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얼굴이 아닌 못난 마음에 집중했고, 음울한 인상이지만 왠지 눈길이 가는 미정을 그런 사람들의 감정 이입 대상으로 만들려 했습니다.”
가족을 버린 아버지가 남긴 상처 때문에 외롭게 자라난 경록, 세상의 편견과 가난 때문에 고립을 선택한 미정, 둘 사이의 균형추 역할을 하며 자유롭게 살지만 마음에 짙은 어둠이 드리운 요한.
이들이 일하는 곳은 화려한 소비의 공간인 백화점이다. 영화는 백화점의 가장 그늘진 곳인 지하 주차장과 창고에서 일하는 이들이 시간을 함께 하며 변해가는 과정을 빛을 통해 보여준다.
늘 음침한 곳에 있던 미정이 경록과 사귀면서 낯빛이 밝아지고 환한 곳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등 조명을 적극 활용한다. 이 감독은 세 인물의 캐릭터를 전구에 빗대 설명했다.
“아픈 가족사를 지닌 경록은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고장난 전구예요. 미정은 꺼진 상태로 오랫동안 방치된 전구입니다. 전기가 들어오면 밝아지는 전구처럼 미정도 사랑하면서 밝아져요. 요한은 빛나게 살 수 있는데도 스스로 스위치를 내려버린 사람입니다.”
경록이 미정에게 느꼈던 호기심과 동정이 사랑으로 커져 갔는지, 그랬다면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이 감독은 “나 또한 그 부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면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을 읊었다.
‘그해 여름, 그는 태어나 처음 사랑에 빠진다. 처음엔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때로는 혼란스러웠으며 시간이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사랑했었다.’
영화는 ‘세상을 구원하는 건 사랑이라는 빛’이란 메시지를 파반느(장중하고 느린 춤곡)처럼 느리지만 묵중한 리듬에 담아낸다.
이 감독은 “사람은 사랑을 통해 빛을 얻고 그 빛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테마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