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지난해 13조50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역대 최대 실적이다. 원가(연료비)는 낮아졌는데,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려 받은 결과다. 산업계를 중심으로 전기요금 인하 요구가 커지고 있지만, 200조원 넘게 쌓인 빚이 문제다.
한전은 26일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액은 97조4345억원, 영업이익은 13조5248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공시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61.7%(5조1601억원) 증가해 창사 이래 역대 최대 규모로 올라섰다. 2021년부터 2023년 3년 연속으로 대규모 적자를 낸 한전은 2024년(8조3647억원) 4년 만에 이익을 냈고, 지난해 흑자폭을 더 키웠다.
한전의 수익성이 크게 개선된 건 산업용 요금 인상 등으로 전력 판매 가격은 올랐는데, 국제 연료비 가격 안정으로 전력 구입 가격은 오히려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전은 발전자회사로부터 전력을 사올 때는 가장 비싼 연료비를 기준으로 책정된 전력도매가격(SMP)으로 전력을 사온다. 지난해 연평균 SMP는 ㎾h당 112.7원으로 전년(128.4원)보다 12.2% 싸졌다. 액화천연가스(LNG) 등 발전 연료 가격이 내려간 영향이다.
반면 지난해 평균 전력 판매 단가는 ㎾h당 170.4원으로 전년(162.9원)보다 7.5원 올랐다. 특히 산업용 전기요금 판매 단가가 ㎾h당 181.9원으로 전년(168.2원)보다 13.7원이나 상승했다. 주택용 판매단가(159원)보다 비싸다. 산업용 전기는 고압으로 송전하고 변압 설비도 기업이 직접 관리해 공급 원가는 가정용보다 더 저렴한데, 판매 가격은 산업용이 주택용보다 비싼 기형적 구조다.
이 때문에 산업계를 중심으로 전기요금 인하 요구도 나온다. 특히 전력 소모가 큰 데다 최근 업황마저 좋지 않은 석유화학, 철강업계에서는 전기요금 인하 목소리가 더 거세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2년 이후 7차례 인상되며 약 70% 올랐다. 특히 2023년 11월과 2024년 10월에는 주택용 요금은 동결한 채 산업용 요금만 인상됐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24일 ‘산업경쟁력 강화와 전기요금 세미나’를 열어 “유가와 LNG 가격은 내려왔는데도 산업용 전기요금은 인하 없이 높게 유지되고 있다”며 “요금 인하가 어렵다면 위기업종만이라도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한전의 재무상황을 보면 전기요금 인하는 쉽지 않다. 지난해 말 기준 한전 부채는 205조7000억원이다. 이자 비용만 하루 119억원, 연간 4조3000억원에 달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던 2021~2023년 한전이 ‘역마진’을 감수하며 싼값에 전기를 판 결과다. 2021년부터 3년간 쌓인 누적 적자가 47조8000억원에 달한다.
전기요금 인상 대신 발행 고삐를 풀어줬던 한전채의 상환도 문제다. 국회는 2022년 말 한전법을 개정해 2027년 말까지 한전채 발행한도를 자본금과 적립금 합계의 2배에서 5배로 늘리도록 허용해줬다. 2024년 말 기준 한전채 발행한도는 90조5000억원인데, 2028년이 되면 발행 한도가 36조2000억원으로 쪼그라든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한전채 발행액은 74조4000억원으로, 법정한도를 준수하려면 2년 내 38조2000억원을 갚아야 한다.
한전은 실적 개선을 바탕으로 차입금 이자 지급과 원금 상환 등 재무 건전성 회복에 주력할 계획이다. 한전 입장에서는 향후 재생에너지 확대와 첨단 산업 전력 수요 증가에 대응하는 대규모 송배전망 투자도 고려해야 한다. 정부의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4∼2038년)에 따르면 송배전 설비에 약 113조원이 투입될 전망이다. 한전 관계자는 “산업계 부담을 고려한 합리적인 요금 체계 개편 추진을 검토하고 국가 전력망 적기 구축에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업계와 학계 등에서는 전기 원가에 연동해 전기요금을 조정하는 체계가 대안으로 꼽힌다. 연료 가격이 하락할 때는 전기요금이 인하되고, 반대로 상승할 때는 요금이 이를 반영해 인상되는 방식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한국의 제조업 기업들은 중국·미국과도 경쟁해야 하는데 산업용 전기요금은 두 나라보다 비싸다”며 “전기 원가와 연동해 ㎾h당 10원만 낮춰줘도 산업계에 큰 도움이 되는 만큼 ‘도매가격 연동제’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