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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우의 내 몸 사용 교과서] 홈쇼핑 알부민 광고의 폐해

중앙일보

2026.02.26 07:06 2026.02.2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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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설 명절, 여유로운 시간 덕에 평소 잘 보지 않던 케이블 방송을 보게 됐다. 채널을 돌릴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홈쇼핑 광고. 화면 속은 온통 알부민 영양제 소개로 가득했다. 나이가 들수록 알부민 수치가 떨어지니 보충해야 한다며 고농도 액상 제품 구매를 권유하고 있었다.

알부민은 우리 몸에서 어떤 역할을 할까? 대표적인 기능은 혈관 속 수분을 붙잡아 두는 일이다. 알부민이 부족하면 수분이 혈관 밖으로 새어 나가 부종을 일으키거나 복수가 차기도 한다. 지방산·호르몬·약물 등을 필요한 곳까지 운반하는 택배 기사 역할도 한다. 각종 노폐물을 간으로 실어 날라 해독을 돕기도 한다. 이처럼 알부민은 수분 균형 유지부터 물질 운반, 해독 보조까지 담당하는 우리 몸의 핵심 단백질이다.

경구 섭취, 만능인 것처럼 선전
먹는다고 알부민 수치 오를까
삶은 달걀 먹는 게 오히려 효과적

홈쇼핑 광고의 화려한 미사여구를 믿어도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알부민은 소화 효소에 의해 아미노산이나 소형 펩타이드로 잘게 분해된 뒤에야 체내에 흡수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렇게 흡수된 아미노산은 알부민 합성에만 쓰이진 않는다. 몸의 우선순위에 따라 근육·효소·호르몬을 포함한 수만 가지 단백질 합성에 두루 쓰인다. 먹는 알부민은 양질의 단백질을 보충하는 정도의 효과일 뿐, 혈중 알부민 농도를 직접 끌어 올리는 해결책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알부민을 만능 영양제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알부민은 간에서 합성되는 단백질로, 간경화처럼 간 기능이 극도로 저하된 환자는 이를 충분히 만들지 못해 복수가 잘 생긴다. 이를 조절할 목적으로 알부민 수액을 처방하는데 이 장면을 지켜보며 일반인들 사이에 알부민이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는 특별한 영양소라는 인식이 퍼진 듯하다. 알부민은 마법의 영양소가 아니다. 간이나 신장에 심각한 질환이 없는 한 알부민이 부족해지는 일은 거의 없으며 노화에 따른 미세한 수치 감소 역시 그 자체로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드물다.

결국 지금의 열풍은 정맥 주사와 경구 섭취의 본질적인 차이를 간과한 오해다. 중요한 사실은 알부민 수액은 의약품이고 먹는 알부민은 식품이라는 점이다. 많은 소비자가 이를 기능성이 입증된 건강기능식품으로 오인하고 있다. 화려한 광고 뒤에 숨은 씁쓸한 단면이다.

알부민 광고를 접한 다음 날 우연히 배우 임현식씨의 일상을 담은 프로그램을 보았다. 아내와 사별하고 반려견마저 떠나보낸 그의 뒷모습에선 짙은 외로움이 묻어났다. 홀로 선 부엌에서 그는 아침 식사를 위해 달걀 5개를 삶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저게 정답인데”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달걀흰자는 알부민 합성에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을 고루 갖춘 최상의 원료다. 실제로 시중에 판매되는 알부민 제품 원재료를 살펴보면 난백분말(달걀흰자)이나 농축유청단백인 경우가 많다. 결국 비싼 알부민 제품보다 달걀 같은 양질의 단백질을 꾸준히 섭취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다.

둘러보면 우리 주변에 이와 비슷한 성분 중심의 환상이 꽤 많다. 콜라젠·엘라스틴·콘드로이틴까지 그 면면도 화려하다. 대중은 이런 성분이 복용 후 해당 부위로 곧장 가 자리 잡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이 또한 소화·흡수의 기본 원리를 간과한 착각이다. 특정 성분 섭취가 특정 부위 개선으로 이어진다는 맹신은 과학보다 마케팅이 만들어낸 달콤한 착각일 뿐이다.

이런 광고에는 신뢰도를 높일 목적으로 이른바 전문가들이 등장한다. 함께 제품을 개발했다거나 자문을 맡았다는 명목으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내가 알부민 광고를 유심히 보게 된 계기는 한 기자가 대화방에 올린 이런 전문가 비판 글이었다. 내가 그 글에 ‘전문가로서 책임을 저버린 상업적 행위’라는 댓글을 달자 다른 지인은 곧장 ‘대중의 신뢰를 기만한 처사’라며 일갈했다.

우리는 정보의 비대칭이 과거보다 많이 해소된 시대에 살고 있다. 조금만 사실관계를 확인해 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을 모른 채 지나치기엔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이 크다. 냉장고 속 달걀이 수만 원짜리 액상 영양제보다 못할 이유는 없다. 건강을 지키는 가장 현명한 첫걸음은 광고를 끄고 냉장고 문을 여는 것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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