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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련의 시시각각] ‘행정의 권위’가 선을 넘을 때

중앙일보

2026.02.26 07:16 2026.02.2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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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련 콘텐트3부국장 겸 기업연구부장
요즘 이재명 대통령이 집값 못지않게 집요하게 챙기는 게 있다. 물가다. 서민들의 삶을 팍팍하게 하는 품목을 찍어 담합이 의심스럽다고 SNS에서 직격한다. 생리대, 설탕, 밀가루, 교복이 대통령의 레이더에 걸렸다. “공권력을 총동원해 시정하라”는 대통령의 주문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바쁘게 움직였다. 이달에만 담합 2건(설탕, 밀가루)의 조사 결과를 내놨다.

담합 벌주려 정부가 가격 결정?
또 다른 시장 왜곡의 출발점
암 잡으려다 환자까지 잡아서야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밀가루 시장의 88%를 점유한 대선제분, 대한제분, 사조동아원, 삼양사, 삼화제분, CJ제일제당, 한탑 등 7개 제분사의 '6년 담합' 혐의에 대한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2006년 이후 20년 만에 재현된 제분업계 담합 사건으로, 관련 매출액만 5조 8000억원에 달해 최대 1조 2000억 원 규모의 과징금이 예고됐다. 사진은 서울 시내 마트에 놓인 밀가루. 뉴스1

담합은 대통령 말마따나 시장경제의 암적 존재다. 제당·제분 업체의 담합으로 인한 1차 피해는 제빵사나 음료 제조사가 보지만 이들 역시 손해볼 장사를 하진 않는다. 그래서 담합의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피해자는 빵·음료를 더 비싸게 구입해야 했던, 혹은 값이 비싸져 구매를 포기해야 했던 소비자들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소비자가 피해를 배상받을 길은 없다. 대신 공정위가 담합 관련 매출의 최대 20%까지 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한다. 주권자의 효능감과 정책의 성과를 중시하는 이 대통령은 공정위에 더 강력한 방망이를 주문하고 있다. ‘가격 재결정 명령’을 쓰라는 지시다. 적용 조건이 까다로운 데다 담합 조사 과정에서 업체들이 선제적으로 가격을 인하하는 바람에 공정위가 20년간 쓰지 않았던 칼이다. 공정위 시정조치 운영지침에 따르면 가격 재결정 명령이 떨어지면 담합 기업들은 각자 ‘독자적으로’ 새 가격표를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얼마쯤 값을 내려야 바람직한지에 대한 규정은 없다. 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가격은 정부가 정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설사 담합 같은 시장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나쁜 짓을 한 기업이어도 새 가격표는 스스로 정하게 한다.

하지만 현 정부는 이 지침을 고쳐서라도 명시적인 가격 개입을 준비 중이다. 지난 24일 생중계된 국무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좋게 말할 때 해라’ 이러지 말고. 얼마까지 얼마 이하로 (가격을) 내려라, 최소한 이 이하로 해라 이렇게 해야 한다”며 “정부의 명령을 안 따를 수 없게 제재 방안을 강구해야 행정의 권위가 선다”고 했다. 공정위 직원을 대폭 늘려 담합을 확실히 잡으라는 당부도 함께.

그러나 정부가 시장 가격을 직접 결정하는 건 선을 넘는 일이다. 그러는 순간 시장의 자원 배분은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암덩어리(담합 기업)를 잡으려다 환자(시장경제)의 면역력까지 망가뜨려선 안 된단 얘기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담합을 하지 않은 경우의 적정 가격이 얼마였을지 정부가 계산할 수 있을까. ‘5%로는 부족하고 10%는 깎아야 한다’는 어림수 계산으로 벌을 줬다간 기업과 주주의 반발에 부닥칠 공산이 크다. 정부가 어렵게 계산해도 현재의 환율·인건비·이윤율 등은 새 가격표에 어느 정도 반영할 건가. 또 기업들은 그 가격을 얼마간 유지해야 하나. 이 모든 걸 정부가 정해줄 건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6회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담합이나 일삼는 기업들을 걱정할 마음은 전혀 없다. 정부의 개입이 지나치면 결국 기업은 다른 방식으로 이익을 만회하려 할 게 뻔해서 하는 소리다. 그러면 소비자든, 노동자든, 하청업체든 누군가는 당장은 드러나지 않는 피해를 보게 된다. 기업을 혼내더라도 시장경제의 원칙은 지켜야 시장의 실패를 바로잡을 수 있다. 덧붙여 대통령의 품목 캐스팅에 의존한 문제 해결 방법의 한계도 생각해 볼 문제다. 기업들이 당분간 눈치는 보겠지만 언제까지 어디까지 대통령이 다 챙길 것인가.

사실 기업의 불법을 교정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금융 치료’다. 담합이나 개인정보 유출처럼 대규모 소비자가 피해를 본 사례가 늘수록 ‘미국식 집단소송’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커진다. 기업을 만신창이로 만들 수 있는 집단소송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무색해지는 것은 다 부도덕한 기업들이 초래한 일이다. 기업의 자정 노력과 함께 시장의 건전한 경쟁을 회복시키는 정부의 현명한 역할을 기대한다.





박수련([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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