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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상호관세 10개월, 투자합의 10년

중앙일보

2026.02.26 07:18 2026.02.2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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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어느 정도 예상된 판결이지만 생각보다 파장이 크다. 미 대법원이 2월 20일 상호관세가 법률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그 근거인 1977년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이 관세 부과는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로써 상호관세는 곧바로 사라졌다. 10개월만이다.

그럼 지난 11월 14일 한미 ‘전략적 투자합의’는 이제 어떻게 되나? 상호관세가 이 합의의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주춧돌이 사라지며 그 구조적 안전성에 자연스레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위법’ 상호관세 사라졌지만
투자합의 속 여전히 연결고리
기본 틀, 진행 유지하더라도
변화 반영해 조정, 정리는 필요

지난 해 어렵사리 합의에 이른 만큼 이를 중단하거나 되돌린다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최소한 지금은 가능성 있는 대안이라 보기 어렵다. 투자합의는 현재 양국 관계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이 축을 흔들면 경제, 금융, 안보, 원자력 등 다른 쪽 도미노들이 순차적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 불확실성에도 불구, 일단 투자합의의 기본틀을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게 현실적인 선택지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가닥을 잡아도 문제가 있다. 한미 투자합의에 ‘상호관세’ 연결고리가 몇 군데 있기 때문이다. 상호관세가 없어졌는데 연결고리는 계속 놓아 두면 어떻게 되나. 정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지금 이렇게 쓰여 있다.

“2025년 7월 30일 양국 합의를 충실히 이행”. 한미 투자합의 첫 머리에 나오는 내용이다. ‘7월 30일 합의’의 핵심이 상호관세다. 상호관세가 무효가 된 마당에 이제 이런 구체적 서술은 헷갈린다.

“한국이 투자를 충실히 이행하는 동안 미국은 조인트 팩트시트에 담긴 약속을 준수”. 투자합의 중간 정도에 나온다. 우리 투자 이행과 미국의 ‘조인트 팩트시트 약속’ 이행을 주고받는 문구다. 그런데 ‘조인트 팩트시트 약속’의 골자가 역시 상호관세다. 실제 최근 우리 투자를 채근하고자 빼든 칼도 상호관세 25% 원상 복귀였다. 이제 상호관세가 사라지며 조인트 팩트시트 속 미측 약속도 그 만큼 사라졌다. 해서 이 문구도 이젠 아귀가 어긋나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이런 몇 가지 부분들에 대한 정리, 조정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일종의 업데이트 작업이랄까. 상호관세가 위법으로 확정됐는데 그대로 묻어 두고 간다면 양측 모두에 부담으로 남을 수 있다. 더구나 이 합의는 10년을 내다 본다. 지금 넘어가도 나중에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얽히며 이를 끄집어 낼 여지도 다분하다. 명확한 정리가 낫다.

왜 이렇게 되었나? ‘주고받기’를 자세히 써 두었는데 한 쪽이 ‘주는 게’ 갑자기 사라진 탓이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기본틀을 유지하더라도 이제 ‘일반화’된 약속으로 바꿔야 한다. 상호관세 이음새들은 빼고, 양국 국익을 위한 전반적 협력 추진 차원에서 투자가 이루어진다는 취지가 그 자리에 들어가는게 적절하다.

게다가 한미 투자합의 끝부분엔 “양국 동의로 수정할 수 있다”는 문구도 이미 있다. 나아가 “국내법 변경 시 상대방에 통보”하도록 쓰여 있기도 하다. IEEPA는 그대로지만 그 해석과 적용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으니 “국내법 변경”에 버금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필요시 양측이 적절한 수정을 살피는 건 이미 예정된 수순이기도 하다.

대법원 판결 후 미 정부는 곧바로 ‘글로벌 관세’ 15%를 발표했다. IEEPA가 아닌 다른 법률(통상법 122조)이다. 그런데 이 관세는 150일 간 가능하다. 상호관세처럼 언제까지나 부과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애초에 50년전 IEEPA로 방향을 튼 것도 이런 제약때문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어쨌든 글로벌 관세는 상호관세와 다르고, 작년 논의 대상도 아니었다. 둘 다 15%라고 똑같다고 볼 순 없다.

새 관세도 언급된다. 무역확장법 232조, 통상법 301조, 201조가 오르내린다. 가능하다. 그런데 이 관세들은 정해진 절차가 있다. 한껏 줄여도 공고, 조사,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판정에 적어도 3~6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그럼 빨라도 초여름이다. 더구나 여기엔 개별 품목별, 국가별 조사를 해야 한다. 복잡하다. 한번에 모든 국가를 판넬에 적고 서로 다른 숫자를 쓴 IEEPA와 사뭇 다르다. 역시 IEEPA로 간 이유다. 요컨대 이들 관세와 상호관세도 서로 성격이 다르다.

이렇듯 상호관세는 여러 면에서 독특했다. 이게 갑자기 사라졌으니 큰 변화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이를 반영하는 문서 작업이 따라야 한다. 번거롭지만 안전하다. 혹시라도 그간 투자 논의에서 확인된 새로운 사항들이 있다면 차제에 업데이트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여러 번 확인된 대로 한미 투자합의는 ‘조약’이 아니다. 단지 정부간 합의 문서다. 새로운 상황에 대한 서로의 입장만 확인된다면, 그리고 본질적인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현행화’ 작업에 그렇게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다.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지만 종합적 양국 국익 조율의 결과인 한미 투자합의 기본틀과 진행은 일단 유지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그러나 동시에 상황 변화를 반영한 조정 내지 정리 작업은 필요하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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