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회 중앙일보 독자위원회가 지난 24일 본사 9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오세정 독자위원회 위원장(전 서울대 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 날 회의에선 중앙일보가 쏟아낸 기획 보도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돈벌이에 포획된 지방의회’ ‘90년대생 엄마가 온다’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인공지능(AI)과 일자리를 연계한 일련의 보도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김주형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지난 한 달간 정치권 동향을 중계하는 형태의 기사가 많았다. 맥락화·구조화에 대한 고민, 언론이 어떤 정치적 의제를 제시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려가 필요할 것 같다. 10·11일 자 ‘돈벌이에 포획된 지방의회’ 기사는 지방의회의 어두운 면을 따끔하게 잘 꼬집은 좋은 기획이다. 일부 의원들의 일탈을 막는 것에 대한 논의를 시작으로 6·3 지방선거에 앞서 지방자치의 제도적 측면을 짚어보는 기획이 나오면 좋겠다. 국내에도 지방자치에 대해 깊은 전문성을 가진 연구자들이 있다. 추가 취재를 통해 지방자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중앙일보가 기여하면 좋겠다.
▶전경주 한국국방연구원 한반도안보연구실장=카이스트-막스플랑크연구소 공동 연구팀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3일 자 ‘김정은 연구’가 눈에 띄었다. 북한의 시군구 별 야간 조도 변화 결과를 통해 북한이 전반적인 경제 발전을 이룬 것이 아니라는 점을 근거 있게 짚었다. 최근 안보 커뮤니티에선 뮌헨안보회의가 화제였다. 뮌헨안보회의에선 유럽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유럽 국가들이 내부적으로 어떤 갈등을 겪는지를 살필 수 있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는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유럽을 달래는 듯한 연설을 해 화제가 됐다. 그런데 한국이 불참해서인지 중앙일보에서는 관련 보도가 거의 없었다. 유럽·인도·아세안처럼 미·중·일·러를 벗어난 지역에 대한 관심도 언론으로서 많이 갖고 다뤄주길 바란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4일과 5일 자 ‘90년대생 엄마가 온다’ 기획은 출산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90년대 여성을 중심으로 기사를 썼다. 출산 이유를 분석하고, 출산 후에는 52%의 엄마만 커리어를 유지한다는 수치를 제시해 출산율 제고를 위해선 제도 개선이 동반돼야 한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12일 자 ‘AI발 일자리 한파에 과학기술 비명…1년 새 10만개 줄었다’ 기사는 최근 주가지수가 상승하며 경제 상황이 좋아 보여도, 실제 일자리 시장은 정반대임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기사였다. AI에 따른 전문 서비스직 일자리가 본격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짚어줘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철호 법무법인 세종 고문=‘돈벌이에 포획된 지방의회’ 기획을 의미 있게 읽었다. 아쉬웠던 것은 문제를 해결할 대책을 제시하는 부분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사정이 비슷한 일본은 ‘입찰 담합 관여 행위’를 처벌하는 법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했다. 일본의 관련 법 내용, 법 제정 과정 등을 취재해 기사화하면 좋은 후속 보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3일 자 ‘두쫀쿠 팔릴수록 자영업자는 운다’ 등의 기사에서 자영업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좋았다. 자영업 창업은 쉬운 게 아니다. 창업하라고 무작정 대출해주는 것도 대책이 아니다. 자영업 성공 사례가 있다면 왜 성공했는지 심층 보도해줬으면 한다. ‘자영업자가 줄어든다, 폐업한다’는 보도보다 그런 내용이 기사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재국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13일 자 8면 ‘“요새 와 뜸하노” 사람 살리는 라면 한 그릇’ 기사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인 고립 문제를 다뤘다. 끊어진 연결을 다시 어떻게 이어낼 것인가, 그 방법론적 사례를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훌륭한 기사였다. 선정적 보도가 많았던 것은 아쉬웠다. 11일 자 1면 ‘“북한군, 팔 불타면서도 돌격” 우크라 장교의 증언’ 기사 제목은 호러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이렇게 과도한 제목을 붙여 보도할 필요는 없다. 특히 1면 제목을 고를 때에는 언어 선택을 더 신중하게 해야 한다. 5일 자 ‘말대꾸하면 바로 뺨 때렸다…다카이치 만든 열혈 경찰 맘’ 기사도 과거에는 뺨을 때리며 교육을 했는지 모르지만, 지금 이런 행동을 잘했다는 듯이 표현한 것은 문제다.
▶하태헌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24일에 나온 ‘판사들 분노 “헌재 파견 끊자”…재판소원 헌법 27조 위반 꺼냈다’ 기사는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힘겨루기하느라 재판소원을 반대한다고 오해할 소지가 있다. 이 문제는 단순히 헌재와 법원의 힘 싸움이 아니라 사법개혁의 문제라는 점을 잘 다뤄주면 좋겠다. 최근 변호사 업계에서는 변호사의 비밀 유지 권리인 ACP(변호사와 의뢰인 간 비밀유지권·Attorney-Client Privilege)가 입법화됐다는 것이 이슈였는데 상당히 의미 있는 변화다. 지금까지는 고객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나온 변호사 자문 내용 등이 유죄 증거로 활용되기도 했었다. 이런 변화와 파장을 심층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광주지검이 최근 300억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분실했다 회수한 사건의 실체에 대해서도 후속 보도를 해주면 좋겠다. 전문가로서 이해가 안 되는 측면이 많다.
▶심재웅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서면 의견)=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보도에서 다른 언론과 비교해 양적·질적인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보도가 이어졌다. 단순한 경기 결과 전달이 아니라 동계올림픽 준비 과정과 개최·진행 과정을 고르게 잘 담았다. 중앙일보 홈페이지에는 동계올림픽 전용 페이지를 개설하고 ‘밀라노는 지금’ ‘종목 분석’ 등을 통해 익숙하지 않은 동계 올림픽 종목을 꼼꼼히 설명해 겨울 스포츠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12일 자 ‘AI발 일자리 한파에 과학기술 비명…1년 새 10만개 줄었다’ 기사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먼저 1년 사이 10만 개가 줄었다는 제목은 일자리가 10만 개 줄었다고 해석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취업자 수가 약 10만 명 줄었다고 언급한다. 또 기사에서는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AI를 강조하지만, 근거가 된 보고서에선 AI를 주원인으로 지적하지 않는다. 이런 제목은 독자를 오인하게 하고 AI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유재연 한양대 사회혁신융합전공 겸임교수(서면 의견)=일자리에 대한 구체적 고민이 담긴 보도가 이어졌다. 5일 자 ‘청년 보릿고개…제조업 좋은 일자리 6만6000개 사라졌다’ 기사는 한국과 중국 등 제조업 국가가 공통으로 겪는 좋은 일자리 소멸 현상을 다뤘다. 20일 자 ‘AI 자율조업 도입한 포스코’ 기사에서는 AI 도입이 노동자의 신체 부담과 대형 사고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줄인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9일 자 ‘얄궂은 노·로 관계…“로봇 반대” 파업, 로봇 투입하면 해결?’ 기사는 AI 로봇 도입을 두고 노사가 갈등을 일으키는 현상을 보도했다. 파업 시 대체 인력 투입은 불가하지만, 기계를 대체 수단으로 투입하는 것은 제약 밖이라는 내용도 잘 정리됐다. 현행 제도가 노동자를 어디까지 보호할 수 있는지 잘 보도했다고 생각한다.
▶홍지혜 마이아트컴퍼니 대표(서면 의견)=1월 30일 자 이건희 컬렉션 관련 기사는 컬렉션이 해외순회전에서 어떤 역할을 해낼지에 대해 문화외교라는 틀로 조망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 다만 제목에서 제시한 ‘미국을 움직였다’는 표현에 비해 본문은 행사 분위기와 참석 인사 중심의 서술이 많은 비중을 차지해, 컬렉션의 문화외교적 역할에 관한 관점이나 인사이트는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노동이나 일자리와 관련된 기사들이 많았는데 각 기사는 각각 의미 있는 문제 제기를 담고 있다. 청년층은 좋은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하고, 재직자들은 10년 안에 AI나 로봇에게 직업을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을 느끼고, 동시에 팀장이 되기는 싫고 승진을 거부하는 모습은 급변하는 시대의 양상이고 전환기의 특징일 것이다. 다만, 이렇게 개별 현상들이 충돌할 때에는 이를 병렬적으로 나열하기보다는 관통하는 구조적 설명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오세정 위원장=좋은 기획 보도가 많았다. 지방의회 기획도 의미 있었고, 쿠팡에 분노할수록 쿠팡에 유리하다는 것을 짚어준 11일 자 ‘안혜리의 직격인터뷰’도 시의적절했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 효과에 대해선 언론도 갈팡질팡하는 것 같다. 처음엔 전·월세 물량이 줄어들 것에 대한 걱정이 많았는데, 실제 매물이 나오기 시작하니 논조가 바뀌는 것 같다. 보다 일관성 있게 보도를 해줬으면 한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무죄 선고에 대해서는 무죄가 나온 이유를 기사에서 정확히 밝혀주는 게 좋지 않겠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