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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이 누군가엔 구원이다…56세 퇴직女 찾은 평생 일자리

중앙일보

2026.02.26 12:00 2026.02.26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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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그래, 알았어. 엄마 퇴근하고 저녁에 봐줄게. "

평생 ‘직장 다니는 엄마’였던 내가 세 딸들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아침마다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엄마, 회사 가지 마”라며 오열하는 아이들을 떼어놓고 사무실을 향해 뛰었고, 회사에 있는 내게 전화를 걸어 그날 있던 일들을 재잘재잘 털어놓으려는 아이에겐 “엄마 회의 들어가야해. 저녁에 집에서 얘기하자”며 서둘러 말을 끊어야 했다.
정남순 직업상담사가 3서울 상암동 중앙일보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당신이 지금 버는 만큼 내가 용돈으로 줄테니, 집에서 나랑 애들 좀 챙겨주면 안될까?”
남편은 결혼 초기, 내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게 ‘직장’은 나의 ‘존재감’과 동의어였다. 남편은 엄청나게 속상해하는 내게 몇번이고 사과했다.

나는 그렇게 ‘직장인 정남순’이라는 정체성을 26년간 지켰다. 유명 교육기업에서 ‘직장인의 별’이라는 임원 자리까지 올랐고, 서울 강남의 고층 빌딩에 전망 좋은 방을 내 사무실로 쓰며 억대 연봉을 받았다. 그러다 나이 50을 앞둔 2018년, 나는 갑작스레 사표를 던졌다.

" 순전히 자의에 의한 퇴사였어요. 당시에 큰딸의 대학 입시가 다가오는데 엄마로서 그 옆을 꼭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어요. 그리고 회사에서 끊임없는 내부 경쟁과 사내 정치가 불편해지기도 했고요. 그리고 ‘나는 언제, 어디서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호기로움도 있었죠. "

그런데 막상 퇴직 날이 다가오자, 전혀 예상치 못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간 나를 팽팽하게 지탱해오던 사회적 끈들이 일순간 후두둑 끊어져 버린 듯 맥이 탁 풀렸다. 수십년간 직장에서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꿋꿋이 버티던 힘이 사라지면서, 갑자기 망망대해에 내던져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온 내게, 가족도 위로가 되진 못했다. 어느새 다 자란 딸들은 더 이상 “엄마, 나랑 놀아줘”를 외치는 어린애가 아니었다. 엄마의 손길 없이도 자신의 일을 척척 해내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남편은 여전히 회사를 다니며 자기 일에 바쁘니, 퇴직한 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 그래, 아무에게도 기대지 말자. 내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자. "

나는 마음 속 폭풍우를 잠재우며 홀로 자신을 추슬렀다. 내가 직접 길을 찾아 진취적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잠시라도 집에서 쉬려던 마음을 돌이키고, 퇴직 이튿날부터 바로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으며 다음 스텝을 모색했다.

어느덧 퇴직 8년차, 56세가 됐다. 그리고 내 인생 2막을 동행할 천직을 찾았다. 바로 직업상담사다. 교육 기업에서 기획·마케팅·홍보 등 전 분야를 다 경험해본 내게, 성인들을 대상으로 적성과 역량에 꼭 맞는 직업을 매칭해주는 직업상담사의 일은 엄청난 도전 의식과 성취감을 안겨준다.
정남순 직업상담사는 교육 기업 임원 시절보다 직업 상담사로 일하는 현재가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현재 내 고객은 고교생·대학생은 물론, 주된 직장에서 퇴직한 뒤 재취업이 간절한 중장년층까지 다양하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나의 현재 수입은 월 450만~500만원 수준이다.

이제껏 직업상담사로 커리어를 쌓아온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지금까지 취득한 자격증만도 10개는 훨씬 넘는다. 직업상담사 2급과 1급 자격증은 물론, 직업능력개발훈련교사, 역량면접코치, 평생교육사 등을 취득해 전문성을 강화했고 매년 서너 개 이상 연수를 들으며 산업 환경에 대한 최신 지식을 업데이트하고 있다.

(계속)

몇 년 간 취업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해 우울증을 겪던 72세 할아버지, 평생 한번도 직장에 다녀본 적 없고 컴퓨터조차 켤 줄 몰랐던 64세 할머니, 학원을 운영하다 문 닫고 재취업이 막막했던 61세 컴퓨터 강사….

지금껏 실로 다양한 인물들이 나의 상담실을 거쳐 취업에 성공했다. 이들은 “내게 이렇게 정성을 쏟아준 사람은 선생님이 처음이다”며 고마워했다.
정남순 직업상담사는 자신을 방문한 고객이 실제 취업에 성공할 때까지 발벗고 뛴다. 그의 고객들은 "내게 이렇게 신경 써주는 사람은 선생님이 처음"이라며 고마워한다. 우상조 기자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해요?”
한 지인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사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은 직업 상담사에게 실적을 요구하지 않는다. 방문 고객에게 성의껏 상담해주고 일자리가 나오면 다리를 놔주는 역할만 하면 된다. 그런데 나는 이분들이 실제 자리를 찾을 때까지 발벗고 뛰니 의아했을 만하다.

나를 뛰게 만든 그 이유가 대체 뭘까. 직업에 대한 나의 철학과 소신, 그리고 70세까지 취업 시장에서 ‘쓸만한 인재’로 남고 싶은 나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지금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모두 알려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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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06360






박형수([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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