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공간으로 진화하는 카페 효율·건강 중시 ‘카밥족’ 늘어나 빵·델리 등 한 끼 식사 메뉴 확대 샌드위치·베이커리가 경쟁력 좌우
직장인의 점심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한때는 김치찌개나 제육볶음 같은 한식 메뉴가 기본 선택지였다면, 최근 오피스타운의 점심시간 카페 풍경은 사뭇 다르다. 커피와 함께 샌드위치, 샐러드, 수프로 한 끼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음료 중심 공간이던 카페가 이제는 식사까지 책임지는 외식 플랫폼으로 빠르게 확장되는 모습이다. 이른바 ‘카밥족(카페에서 밥 먹는 사람들)’의 증가는 이런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카페에서 식사를 즐기는 문화가 한국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 청담동과 압구정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미엘, 스케줄, 먼데이투선데이 등은 커피와 함께 김치볶음밥, 떡볶이, 파스타를 판매하며 ‘브런치·올데이 다이닝’ 문화를 이끌었다. 이후 카페 식사는 고물가와 실속 소비 트렌드가 맞물리며 프랜차이즈와 로컬 베이커리로 확산됐다. 과거 ‘분위기 중심의 특별한 경험’이었다면, 지금은 ‘효율과 건강’을 중시하는 일상적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카밥족이 늘면서 대형 브랜드들도 식사 메뉴 확대에 나서고 있다. 캐나디안 커피하우스 팀홀튼은 한국 진출 3년 차를 맞아 도넛 중심에서 ‘한 끼 식사’로 메뉴 전략을 확대했다. 주문 즉시 매장에서 조리하는 ‘팀스키친(Tim’s Kitchen)’ 시스템을 통해 멜트 5종과 파스트라미 샌드위치, 샐러드 등을 즉석 제조하며 품질을 끌어올렸다. 그 결과 최근 한 달 사이 푸드 매출 비중이 약 6%포인트 상승했다. 안태열 팀홀튼 CBO는 “단순한 메뉴 확장이 아니라 가장 맛있는 온도와 신선함을 전달하는 것이 목표”라며 “푸드 경쟁력을 바탕으로 소비자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브랜드가 되겠다”고 밝혔다.
투썸플레이스도 디저트 중심 경험을 식사까지 확장하는 방향으로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다. ‘올데이 투썸 세트’는 합리적인 가격을 앞세워 2025년 매출이 전년 대비 약 30% 증가했고, 델리·베이커리 신제품 수도 20% 늘었다. 인기 메뉴인 ‘불고기 치즈 멜트 파니니’, ‘멕시칸 파니니’ 등 핫 샌드위치의 치즈와 육류 토핑을 강화해 포만감을 높였으며, 최근에는 불닭과 불고기 등 K-푸드 감성과 매콤·치즈 조합을 반영한 메뉴를 통해 한 끼 식사로서의 경쟁력을 확보한 전략이 주효했다.
할리스는 델리 라인업을 정교화하며 커피와 식사를 함께 해결하려는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2025년 4분기 케이크를 포함한 푸드군 매출은 전 분기 대비 약 28% 증가했다. 에그마요, 크로크무슈에 이어 필리 치즈 스테이크 포카치아를 추가하고, 비건 샌드위치와 베이커리를 확대해 선택 폭을 넓혔다. 지난해 11월 출시한 필리 치즈 스테이크 포카치아와 베이컨 트러플 머쉬룸 포카치아도 꾸준한 판매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카페의 ‘식당화’ 현상을 복합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먼저 외식 물가 상승으로 점심 한 끼 가격이 1만 원을 넘어서면서, 7000~1만원대에 음료와 식사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카페 세트 메뉴가 합리적인 대안으로 떠올랐다는 분석이다.
식습관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2025년 이후 베이글, 소금빵, 사워도우 등 ‘빵식’이 한 끼 식사로 자리 잡고, 그릭요거트·샐러드·삶은 계란 등 ‘헬시플레저’ 메뉴가 확충되며 가벼운 식사를 선호하는 직장인 수요를 흡수했다. 푸드 콘텐트 김혜준 디렉터는 “소비자들이 단맛 중심 음료에서 벗어나 키친 기반의 건강 메뉴에 눈을 돌린 점이 크다”며 “카페를 바라보는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은 대형 프랜차이즈를 넘어 로컬 브랜드로도 빠르게 확산되는 분위기다. 프릳츠 장충점은 파라다이스 R&D팀과 협업해 탄생한 공간으로, ‘밍글스’ 강민구 셰프가 참여했다. 이곳은 시간대별 수요에 맞춘 메뉴 구성이 특징이다. 아침에는 러너를 위한 샐러드와 건강식을, 점심과 저녁에는 비프 브루기뇽, 라자냐, 파스타, 닭강정 등 레스토랑급 메뉴를 선보인다. 밤에는 와인 페어링까지 더해 카페가 하루 전반의 미식 경험을 책임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카페 푸드의 성장은 새로운 사업 모델로도 이어지고 있다. 본아이에프는 커피 브랜드 ‘이지브루잉 커피’에서 인기를 얻은 식빵을 별도 브랜드로 분화했다. 2025년 기준 이지브루잉의 베이커리 매출 비중은 약 37%에 달한다. 프랑스 AOP 버터를 사용한 생식빵과 커피 세트(6000원~1만1500원)는 직장인 수요를 끌어모았다. 결국 2026년 1월 프리미엄 생식빵 전문점 ‘이지화이트 브레드’ 1호점을 열었다. 카페의 보조 메뉴였던 푸드가 독립 브랜드로 확장된 사례다.
이 같은 흐름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나타난다. 영국의 프레타망제(Pret A Manger)는 매장에서 직접 만드는 신선한 샌드위치와 수프로 전 세계 주요 오피스타운의 점심 수요를 공략하고 있다. 일본의 코메다 커피는 단팥을 곁들인 ‘나고야식 아침 메뉴’로 인기를 끌고 있다. 김 디렉터는 “음료 주문 시 토스트와 삶은 계란, 단팥 앙금을 제공하는 서비스는 현지 비즈니스맨에게는 든든한 아침 식사로, 여행객에게는 필수 조식 코스로 통한다”고 설명했다. 카페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을 넘어 식사 수요까지 흡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카페가 커피 맛만으로 승부하기 어려운 시대다. 저가 커피 확산과 원두 가격 상승 속에서 푸드는 수익성과 브랜드 정체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 소비자에게 카페는 빠르고 합리적인 식사 공간이자 취향 기반의 미식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는 원두의 풍미만큼 샌드위치의 신선도와 베이커리 완성도가 브랜드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지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