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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ing&Food] 흉내와 기억 사이 삭혀낸 외할머니 ‘야매’ 식해

중앙일보

2026.02.2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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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빌려온 입맛 ② 식해


무 썰어 넣고 양념 버무려 삭혀
정통 식해보다 투박, 소화는 잘돼
고향을 복원해 빚은 그리운 맛

내 아릿한 보배 가자미는
갓 볶아낸 듯 고소한 냄새가 나고
슴슴하니 맛이 들어 내 입맛에 꼭 맞는구나
- 백석의 시 『선우사』 중에서

출처: GettyImagesBank
가보지 못한 곳의 맛이 내 취향이 될 때가 있다. 실향민 3세대가 부모님의 이야기를 통해 물려받은 ‘기억 속의 식탁’을 기록한다. 그 두 번째는, 시간을 천천히 삭혀 완성하는 북녘의 발효 음식, 식해다.
사라져가는 풍경을 가장 익숙한 언어로 기록한 시인 백석의 글에는 유난히 많은 음식이 등장한다. 삶의 작은 조각에도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에게, 오감으로 스며드는 음식이야말로 기억을 붙드는 가장 단단한 매개였을 터다. 함경도 출신인 그가 고향을 떠올릴 때마다 가자미와 가자미식해를 불러내어 ‘보배’라 칭송한 것도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지금은 강원도지만 당시에는 함경도였던 원산에서 폭격을 피해 서울로 피난을 온 나의 외할머니에게도 식해는 잊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다만 우리 집에 전해 내려오는 외할머니의 식해는, 솔직히 말해 ‘야매’에 가까웠다. 피난길에서 부모를 잇달아 여의고,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어린 동생을 책임져야 했던 소녀 가장. 고향에서는 고등학교까지 나온 귀한 딸이었지만, 전쟁은 그에게 음식을 제대로 배울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외할머니의 음식 이야기를 물으면 늘 이런 말이 덧붙는다. “그래도 외할머니는 제대로 배우질 못했어. 자기 음식은 고향 것과는 다르다고 하더라.” 놀랍지 않게도, 실향민 3세대에게 추억을 청하면 비슷한 말을 자주 듣는다. “우리 할머니는 자기 엄마가 진짜 음식을 잘했대요. 자기는 미처 못 배워서, 자기 음식은 음식도 아니라고 했어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저릿해진다. 그 전쟁통에 부모를 모두 잃은 사람이 어디서, 어떻게 음식을 배우고 익힌단 말인가.

그런데도 외할머니는 식해를 만들었다. 온 식구가 밥을 나누어 먹고도 가마솥에 남으면, 무를 잘게 썰어 넣고 갖은 양념과 소금, 고춧가루를 버무려 삭혔다. 정통 식해라고 부르기에는 한없이 투박하고 즉흥적인 방식이었지만, 그것이 외할머니가 붙들 수 있었던 고향의 맛이었다. 어머니는 집에서만 맛볼 수 있었던 그 ‘부족한’ 식해를 ‘아주 시원하고 소화가 잘되는 맛’이었다고 회고한다. 놀라운 것은 이모가 가끔 그 맛이 생각나서 이 야매 식해를 직접 재현한다는 사실이다. 레시피가 변형되며 전수되는 순간을 목격하는 기분이다.

‘진짜’ 식해는 무엇일까. 좁쌀로 고두밥을 짓고, 가자미나 명태를 뼈째 잘게 썰어 절인 무와 함께 발효시킨다. 식해(食?)의 ‘해(?)’는 젓갈을 뜻한다. 북한에서는 이를 ‘식혜’라 부르기도 하니, 젓갈의 일종이자 생선 발효 음식의 범주에 속한다. 다른 음식은 곧잘 차려내는 외할머니가 식해만큼은 그리도 엉성해야만 했을까. 생선을 통째 삭히는 발효 음식의 높은 벽 때문이었을까? 함경도식 명태 김치도 담그시던 분이 왜 식해에서만큼은 서툴렀는지 의문이 남는다.

서울에는 할머니의 손맛을 그리는 최지형 셰프의 이북 음식 다이닝 ‘리북방’이 있다. 함경남도 피난민의 장녀였던 그의 할머니는 돼지 피와 내장으로 순대를 직접 빚던 분이었다. 순대 오마카세를 기대하며 방문한 나는, 그 옆에 조용히 놓인 식해에 마음을 사로잡혔다. “원래 뼈가 들어가야 오리지널 식해 맛이 나죠.” 식해를 가장 이북다운 발효 음식이라 꼽는 최 셰프. 매콤짭조름하게 삭은 가자미 살은 새콤한 맛을 더하고, 좁쌀밥이 스민 무는 오독오독 씹히며 기름진 여운을 정리한다. 그는 냉장고를 열어 식해를 담그고 남은 생선 대가리 봉지를 보여주었다. 내장은 찌개로, 아가미는 젓갈로, 대가리는 전으로 부친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우리 외할머니도 어깨너머로라도 더 배웠다면, 머리부터 꼬리까지 버리는 것 없이 식해를 만들었을까. 아니면, 이미 그 나름의 방식으로 충분히 고향을 복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배우지 못한 맛은 완벽한 재현이 아니라, 흉내와 기억 사이에서 겨우 붙들어지는 방식으로 남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주방을 꾸려온 지 십여 년이 지났어도, 어떤 날에는 어머니의 바로 그 손맛이 간절해진다. 완벽하지 않아도, 내가 먹고 자란 음식이기에 그것이어야만 하는 맛. 고향의 맛을 얼기설기 기억나던 대로 빚어냈던 외할머니는 그 식해 속에서 과연 무엇을 보았을까. 그저 비슷한 맛이 아니라,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함께 삭혀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정연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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