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은 저마다의 사연으로 낙오된 선수들이 외딴 섬에서 혹독한 훈련을 버텨내고 프로야구로 돌아가 맹활약하는 이야기다. 지난 겨울 신지애가 꾸린 호주 멜버른 전지훈련에서 비슷한 기운이 풍겼다.
모인 얼굴들이 예사롭지 않다. LPGA 통산 15승에 빛나는 고진영, KLPGA 통산 5승의 임희정, KPGA 통산 5승의 이태희가 한자리에 뭉쳤다. 일본 여자프로골프 투어(JLPGA)에서 활약하는 가나자와 신야와 구도 유미도 합류했다. 화려한 경력을 쌓은 선수들이 신지애(38)를 찾아간 것이다.
결기가 읽힌다. 세계랭킹 1위를 163주 동안 지켰던 고진영은 2023년 이후 우승 가뭄 해갈을 위해 자존심을 굽혔다. 데뷔 첫해 3승을 휩쓸고 슈퍼루키로 이름을 날렸지만 교통사고 이후 날카로움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임희정도 재도약의 답을 신지애에서 찾았다. KPGA 20년 베테랑 이태희는 훈련을 잘 할 수만 있다면 여성 선수들 틈이라도 상관없다며 땀을 흘렸다.
신지애 캠프 훈련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지난해 이일희가 증언했다. 어깨 부상으로 투어 카드를 잃었던 이일희는 37세에 US여자오픈 예선을 뚫고 시드를 되찾은 강자다. 그가 신지애와 훈련 며칠 만에 몰래 귀국 비행기를 알아봤다고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신지애가 하루 4시간밖에 안 잔다는 것. "피곤하면 자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운동을 더 해요. 터미네이터가 된 것 같아요." 이일희는 혀를 내둘렀다.
신지애는 연습 환경도 100% 훈련용으로 꾸렸다. 골프장 안에 숙소를 두어 이동 시간을 없앴고, 찬모를 대동해 식사를 해결했다. 남반구의 긴 여름 해 덕에 밤 9시까지 스윙을 이어갈 수 있었다. 섬은 아니었지만, 섬이나 다름없는 듯 하다.
임희정은 훈련을 마치고 이렇게 고백했다. 평소 자신이 누구보다 연습을 많이 한다고 자부했는데, 신지애와 함께하고 나서야 그게 아니었음을 새삼 실감했다고. 그 말을 전하는 신지애가 조용히 웃었다.
신지애에게 이번 시즌은 역사적인 해가 될 수 있다. 한국, 미국, 일본을 합친 통산 67승의 주인공인 그의 시선은 지금 일본 투어 30번째 트로피를 향해 있다. 영구시드까지 단 1승이 남았다. "2승을 남겼을 때는 부담이 컸는데, 1승이 남으니 오히려 별 부담이 없어요." 멜버른의 밤 9시까지 스윙을 멈추지 않은 사람의 말이라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신지애는 "골프가 좋은 게 아니라, 잘 치는 골프가 좋아요. 훈련할 때 온·오프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오프가 아니라 온이에요. 훈련은 미련 없이,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옥훈련을 버텨낸 이들이 2025시즌 코스 위에서 어떤 그림을 그릴까. 밑그림은 이미 멜버른에서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