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고정밀 지도가 처음으로 국외 반출된다. 정부는 구글이 요청해온 국내 고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조건부 허가’하기로 했다. 국내 안보시설 등 민감 정보를 가리는 가공 작업을 국내에서 처리한다는 조건에서다.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는 27일 지도 국외반출 협의체를 열고 엄격한 보안 조건 준수를 전제로 조건부 허가를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협의체는 구글에 국가 안보와 관련해 ▶영상 보안처리 ▶좌표 표시 제한 ▶서버·사후관리 등 기술적인 세부사항 보완을 요청했고, 구글이 이 조건을 준수하는 것을 전제로 허가를 결정했다.
영상 보안처리 관련해 구글 맵스, 구글 어스의 글로벌 서비스에서 한국 영토에 대한 위성·항공사진을 서비스하는 경우 관계 법령 등에 따라 보안처리가 완료된 영상을 사용해야 한다. 과거 시계열 영상(구글 어스)과 스트리트 뷰에 대해서도 군사·보안시설은 가림 처리를 하도록 했다. 아울러 한국 영토에 대한 좌표 표시를 제거하거나 노출을 제한하는 조건을 걸었다.
특히 반출 데이터 가공과 사후 관리를 국내 서버 등을 통해 하도록 했다. 즉 구글의 국내 제휴기업이 국내에 보유한 서버에서 원본데이터를 가공하고, 정부 검토·확인을 거친 데이터만 반출한다. 반출 데이터도 내비게이션, 길 찾기 서비스를 위해 제한된 데이터만 반출토록 했다. 김태형 국토부 공간정보제도과장은 “구체적으로 기본 바탕 지도·도로 등 교통·네트워크에 한정한 데이터만 반출이 가능하고, 등고선과 3차원 정보 등 안보적으로 민감한 데이터는 반출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말했다.
국내 서버를 통한 데이터 가공과 반출은 정부가 구글에 요구해온 핵심 조건이었다. 김 과장은 “보안 사고 발생 시 즉각 수정하고 처리하는 것이 국내 안보 관련해 가장 중요한 사항이었다”며 “국내법이 적용되는 국내 서버에서 데이터 가공 후 안보 문제가 없는 데이터만 반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사·보안시설이 추가·변경돼 수정이 필요한 경우에도, 정부 요청에 따라 국내 제휴기업에 신속히 수정을 요청하고 국내 제휴기업이 국내 서버에서 수정하는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그동안 구글 지도는 국내법 적용을 받지 않다보니 주요 정부 시설 노출 등 취약한 측면도 있었다. 정부는 이번 이행조건 마련을 통해 구글 지도가 국내법 체계로 들어오면서 안보상 국익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보안 사고에 대해서도 공동으로 대응한다. 국외 반출 전 정부와 ‘보안사고 예방 및 대응 프레임워크’를 수립하고, 국가안보 관련 임박한 위해 또는 구체적 위협이 있는 경우 긴급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 방안(‘레드버튼’)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구글이 한국 지도 전담관(Local Responsible Officer)을 국내 상주하도록 하고, 정부와 상시 소통 채널을 구축하기로 했다.
협의체는 이 같은 조건 충족 여부를 정부가 확인한 후 실제 데이터를 반출하도록 하고, 지속적이고 심각한 조건 불이행이 있을 경우 허가를 중단·회수할 방침이다. 한번 반출된 데이터 회수가 가능한 것이냐는 지적에 대해 김 과장은 “반출된 데이터를 갖고 (구글이) 더 이상 영업 활동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협의체는 “구글이 제시한 기술적 대안을 검토한 결과, 그간 지적됐던 군사·보안시설 노출, 좌표 표시 문제 등 기존의 안보 취약 요인을 보완됐다”며 “국내 서버에서 민감 정보를 처리한 후 정부 검토·확인을 거친 제한된 정보만 반출하는 체계를 통해 사후관리 통제권이 확보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고 밝혔다.
또 이번 결정과 관련해 협의체 내에선 외국인 관광 증진, 지도 서비스 기반의 경제적·기술적 파급효과, 국내 공간정보산업 등에 대한 영향 등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고정밀 지도는 실제 거리 50m를 지도상 1㎝로 줄여 표현하는 1대 5000 축척의 지도다. 현행 공간정보관리법상 1대 2만5000 축척보다 세밀한 지도를 국외로 반출하려면 국토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구글은 2007년과 2016년에 이어 지난해 2월 한국 정부에 지도 반출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안보상의 이유로 거부했다.
구글은 현재 정부의 보안심사를 통과한 SK 티맵의 1대 5000 축척의 지도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데이터 국외 반출 없이도 가능한 단순한 전자지도 표시 서비스다. 하지만 길 찾기 기능 등 지도 서비스가 어려워 구글은 정부의 고정밀 지도 반출을 요청해왔다.
정부가 구글과 접점을 찾은 것은 불확실성이 커진 한·미 관세 협상에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은 정부의 고정밀 지도 반출 거부를 비관세 장벽 중 하나로 지목하며 규제를 풀라고 압박해왔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등이 연방대법원에서 위법 판결을 받고, 이를 대체할 글로벌 관세가 부과되는 등 불확실성이 커졌다. 이에 정부도 한·미 간 통상 협상력 제고 측면을 고려했을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한편 이날 국방부는 “주요 시설 보안 처리와 지도상 좌표 표시 제한 등을 선행 조건으로 제시해왔다”며 “이 조건이 충족되면 안보 위해 요소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해당 사안에 동의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