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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좋게 지낼 이유 없다"…대미 손짓한 김정은, 트럼프 만날까

중앙일보

2026.02.26 21:56 2026.02.27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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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2월 28일(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단독정상회담을 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AFP=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9차 당대회 결산에서 향후 5년 동안 “전략 전술적인 대외 활동”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이는 그간 정상 외교를 통해 국제 사회에서 몸값 높이기를 시도해 온 김정은이 또 한 번 예측 불가한 대외 승부수를 걸겠다는 뜻일 수 있다. 김정은은 미국을 향해 핵보유 인정을 전제로 한 ‘조건부 대화’에 열려 있다고 재차 확인했는데, 미 백악관은 2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여전히 어떤 전제조건 없이 김정은과 대화하는 데 열려 있다”라고 밝혔다.



“주동적, 책략적 대외활동…국제 정세 주도권 차지할 것”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26일 공개한 사업 총화 보고에서 김정은은 “대외 활동을 주동적으로, 책략적으로 벌여 나감으로써 우리 국가의 대외적 권위와 영향력을 보다 폭넓게 확대 강화해나가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번 9차 당대회는 19~25일 7일간 평양 4.25 문화 회관에서 열렸다.

김정은은 이어 “모든 대외 활동은 철두철미 당중앙의 직접적인 지도와 관여” 속에 진행되며 “적수국들을 철저히 견제 제압하면서 국제 정세에서 확고한 주도권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노동신문은 26일 "김정은 동지께서 20~21일 역사적인 제8기 당 중앙위원회 사업 총화 보고를 했다"라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지칭하는 ‘적수들’은 통상 한·미·일을 뜻한다. 표면상 이는 북·중·러 정상 외교를 통해 반미 연대를 공고히 하겠다는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북·미 정상회담도 염두에 뒀을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실제 김정은은 총화 보고에서 “만일 미국이 공화국 헌법에 명기된 우리 국가의 현 지위를 존중하며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한다면 우리도 미국과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라면서 “조미(북·미) 관계의 전망성은 미국 측의 태도에 전적으로 달려있다”라고 했다. 자신들의 헌법에 명시한 핵보유국 지위를 미 측이 인정하는 것을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내건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의 태도 변화를 봐 가며 계속 관망적 태도를 견지하겠다는 의미”라며 “역설적으로 미국에게 보내는 매우 적극적인 대화 신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라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9년 6월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친분 과시용 만남서 美 ‘핵보유 용인’ 노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여러 차례 김정은을 만날 의사를 표명했다. 지난해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미 측은 경주-판문점 간 헬기 동선을 확인하며 돌발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했다. 김정은도 이에 앞선 지난해 9월 말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나는 아직도 개인적으로는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정부 일각에선 4월 북·미 대화설의 불을 지피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트럼프의 4월 방중이 북·미 정상이 만날 “관건적 시기”라고 언급했다.

다만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더라도 비핵화에 있어 실질적 진전을 보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정은은 9차 당대회 기간 핵 보유는 “불퇴의 선”이며 비핵화 시도를 “위헌 행위”로 규정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양측의 친분을 재확인하는 이벤트성 만남에 그치거나, 북한의 핵 보유만 용인하게 되는 군축 협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그래서다.

지난해 9월 3일 중국 천안문 망루에 '북ㆍ중ㆍ러' 3국 정상이 나란히 섰다.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가는 ‘마지막 퍼즐’로 북·미 정상회담을 활용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앞서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군사동맹,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여 등을 통해 중·러로부터 북핵에 대한 묵인을 받아냈다. 앞서 트럼프는 여러 차례 북한을 향해 “핵 권력(nuclear power)”이라고 공개 발언한 적이 있다.

김정은이 이번 9차 당대회 총화 보고에서 대외활동 확대 전략에 대해 “지금 우리의 적수들은 우리가 무엇을 구상하고 무엇을 계산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그들은 알 수가 없으며 또 몰라야 한다”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그가 대미·대남 노선에 바로 이어 대외활동 전략을 설명했다는 점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반면 김정은이 대화의 문턱을 높여 놓은 만큼 양 정상의 만남 성사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김정은은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 시정 연설에서 5차례에 걸쳐 제재 문제를 거론했다”라며 “트럼프를 만나 제재 완화를 얻어낼 수 없다고 판단한다면 김정은은 그를 만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25일 제9차 노동당 대회 폐막을 기념하는 열병식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개최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열병식 연설에서 "우리 무력은 모든 상황에 준비돼 있다"며 "어떤 세력의 군사적 적대행위에 대해서도 즉시에 처절한 보복공격을 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신문, 뉴스1


여정은 장관, 주애는 연단 올라…백두혈통 부각

전문가들은 이번 당 대회를 통해 북한이 김정은 중심의 통치 체제를 보다 공고히 했다고 분석했다. 노동신문은 27일 김정은이 당 대회를 마친 전날 새로 구성된 당 지휘부와 함께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았다고 전했다. 신문은 김정은을 “김일성·김정일주의 위업의 가장 충직한 계승자이며 조선노동당의 절대적 권위와 무비의 강대성의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은은 9차 당대회 4일 차인 지난 22일 노동당 총비서로 만장일치 재추대됐다. 이일환 당비서가 총비서 선거 제의에서 “반만년 역사에 일찍이 없었던 그리고 해방 후 75년과도 뚜렷이 구별되는 위대한 승리”를 이뤘다고 김정은의 업적을 부각하면서다.

백두혈통인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의 승진도 눈에 띈다. 노동당 부부장이었던 그는 지난 23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9기 제1차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통해 중앙위 부장(장관급)으로 올라섰다. ‘체급’이 높아진 김여정은 북한의 대미·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신설 부서의 장을 맡았을 수 있다. 또 당의 핵심 권력기구인 정치국 후보위원 명단에도 다시 올랐다. 이는 김여정의 정치적 입지가 강화됐다는 점을 뜻한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제9기 제1차 전원회의에서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출되며 당 핵심 권력기구에 재진입했다.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후보위원 명단에서 제외된 지 5년 만이다. 이번 인선에서는 정치국 후보위원 복귀와 함께 당중앙위원회 부장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노동신문, 뉴스1
다만 주애는 당 직책 부여 없이 당대회가 끝난 뒤 열병식에서 등장했다. 김정은은 25일 평양에서 열린 당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딸 주애와 주석단에 함께 올랐다. 북한이 공개한 영상에선 가죽 재킷을 입은 주애가 행사장 계단을 내려오며 정중앙에 서고, 김정은은 옆으로 비켜나 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당대회 기간 북한 정치권력의 핵심인 당 중앙위원회 위원·후보위원 선출에서 ‘올드보이’들의 퇴진과 세대교체도 두드러졌다. 통일부에 따르면 당 중앙위 위원·후보위원은 8차 당대회 대비 56%가 교체됐다.

빨치산 2세대의 대표 격인 최용해도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빨치산 출신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이다. 올해로 76세인 그는 당중앙위 후보위원 명단에서도 빠지며 은퇴 가능성을 시사했다.

최용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지난해 12월 27일 북한 헌법절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7.27.0003' 번호판을 단 승용차에서 내려 행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군부 서열 1·2위를 오갔던 박정천 당비서와 이병철 당 군수정책담당 총고문, ‘대남통‘ 김영철 당 고문과 이선권 당 10국(전 통일전선부) 부장도 당 중앙위 명단에서 제외됐다. 김정은의 외화·사치품을 조달하는 노동당 39호실의 실장 신용만도 10년 만에 교체된 것으로 나타났다.



무기 없는 열병식 왜

이번 9차 당대회의 또 다른 특징은 핵 분야를 제외하곤 군사 분야를 ‘로키’로 가져갔다는 점이다.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에 따르면 2015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행사 이후 13차례 열병식 중 장비가 등장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실제로 대형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TEL)와 같은 대형 장비는 열병식 준비 때부터 포착되지 않았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이는 러시아 파병 등으로 탄탄한 대외 입지를 확보한 김정은이 무력시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이 지난 26일 조선중앙TV를 통해 중계된 당9차대회 기념열병식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됐던 해외작전부대와 해외공병연대 소속 군인들이 러시아 국기와 인공기를 앞세워 들고 행진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국방 분야와 관련해 김정은은 총화 보고에서 “핵 운용 수단과 활용 공간의 확장”을 거론하면서 새로운 5대 국방 과업을 밝혔다. 이는 ▶지상·수중발사형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인공지능(AI) 무인공격체 ▶위성공격용 특수자산 ▶적의 지휘중추를 마비시키기 위한 강력한 전자전 무기체계 ▶진화한 정찰위성 확보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남측 감시·정찰자산(ISR)을 겨냥 위성 공격 무기를 개발하겠다고 공언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향후 5개년 간 현대전의 핵심인 우주 차원의 무기 개발에 공을 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유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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