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막바지를 맞은 최근 전국 각지의 노후 건물에서 화재로 인한 인명·재산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건물은 점점 더 낡아가는데, 재개발 등을 앞뒀다는 이유로 사고 취약점을 간과하거나 방치하는 바람에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지난 26일 오후 불이 난 서울 중구 북창동의 한 식당 건물은 1935년 사용 승인돼 올해 91년 된 건물이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화재로 인한 붕괴 위험이 있어 아예 건물을 부수며 진화해야 했다. 현장 목격자는 “음식을 만드는 화구에서 불이 났다”고 전했다. 일상적으로 켜고 끄던 화구 불이 건물 전체로 확산하는 동안 이를 막을 장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현재 북창동 일대는 노후 건물을 중심으로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앞서 24일 화재로 17세 예비 고교생이 숨지는 등 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 역시 화재 초기 대응을 위한 설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1979년 준공된 이 아파트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았다.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규정이 1990년에야 생겼고, 이미 지어진 건물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마아파트는 1990년대 말부터 재건축을 계획했지만, 현재까지도 관련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이에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선 “열악한 주차장, 안내 방송 체계 등 구축 아파트의 환경이 비극을 만들었다”와 같은 비판도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부산 해운대구 우동에 있는 지어진 지 41년 된 아파트에서 불이 나 70대 남매가 사망하기도 했다. 이곳 역시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닌 ‘화재 사각지대’였고, 당초 추진했던 재개발도 한 차례 좌초된 뒤 계속 미뤄지던 중이었다.
전문가들은 사고 때마다 “장기간이 소요되는 재개발·재건축 절차 특성을 고려해 마냥 기다리며 미루는 대신 당장에라도 화재 등 사고 피해를 막기 위한 시설 개선을 진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현실에선 걸림돌이 많아 쉽지 않다고 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구축 건물에 스프링클러를 추가로 설치하기 위해선 수조와 배관·펌프 등을 설치해야 하고, 약 한 달의 시공 기간 동안 세입자가 집을 비우도록 해야 해 큰 비용이 든다”며 “재개발 논의가 나오는 건물은 ‘어차피 부수고 다시 지을 건데’란 생각 때문에 비용을 들여 화재 대비 시설을 설치하려는 사람이 적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아파트의 경우 소방 시설 등 공동주택 설비 보수·유지를 위한 예산(장기수선충당금)이 없거나 턱없이 부족한 경우도 상당수다. 심형석 미국 인터내셔널 아메리칸대학(IAU) 교수는 “한국의 아파트는 가격 방어를 위해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 고치고, 내부 수리를 위한 장기수선충담금은 최소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주민들이 동의하더라도 노후 건물엔 소방 관련 설비를 추가 설치할 공간 자체가 부족한 경우도 많다.
결국 문제 해결을 위해선 관련 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그동안 국회는 여러 대형 화재 이후 의료·교육기관 등을 포함해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대상 시설을 확대하는 법 개정안을 처리해 왔다. 그러나 아파트 등 기존 공동주택에 스프링클러(간이 스프링클러 포함) 설치를 의무화하는 안은 여전히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이 역시 비용 문제가 만만치 않아 사람들이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김상식 우석대 산업안전소방학과 교수는 “돈이 많이 드는 스프링클러 설비 대신 세대당 10만~20만원 정도가 드는 자동 확산 소화기만이라도 의무화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도 있다”며 세부적인 내용을 조정해서라도 안전을 가장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