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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감독' 류승완 꺾은 '은희 남편' 장항준…비결은 중간에 있다

중앙일보

2026.02.2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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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필름 IN 장항준] ‘왕과 사는 남자’ 흥행 비결은

왕이냐 스파이냐. 지난 설 연휴 독자들은 갈림길에 섰다. 장항준 감독의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와 류승완 감독의 영화 ‘휴민트’ 얘기다. 아니다. 딱히 갈림길도 아니었다. 사실 모두가 스파이에 베팅했다. 류승완 영화는 그 자체로 일종의 이벤트다. ‘베테랑’(2015)이 커리어 최초 천만 관객을 동원한 이후, 류승완은 한국 블록버스터의 상징이 됐다. 코로나 시절 개봉한 ‘모가디슈’(2021)가 361만, ‘밀수’(2023)가 514만, ‘베테랑 2’(2024)가 752만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그가 ‘베를린’(2013)에 이어 첩보물 ‘휴민트’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모두의 기대는 치솟았다. 장항준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크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은 왕을 택했다.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 20여일 만에 673만 관객을 넘겼다. 코로나 이후 본 적 없는 속도다. 스물다섯 번째 천만 영화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왕과 사는 남자’
류승완 감독은 지금 한국 영화에서 대단히 소중한 존재다. 코로나 시절에도 극장을 고수하며 대작을 만들었다. 대작도 투자자 찾기 힘든 시대에는 고집이 한국 영화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그런데 나는 장항준 감독도 좋아한다. 사실 이 문장은 의미가 없다. 한국에서 장 감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다. 그는 김은희 작가의 ‘팔자 좋은 남편’이자 예능인이자 가끔 감독도 하는 유명인이었다. 나는 그의 옛 영화 ‘라이터를 켜라’(2002), ‘불어라 봄바람’(2003)을 좋아한다. 그는 자신처럼 평범한 혹은 평범한 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남자다. 캐릭터는 항상 허술하다. 판단을 제대로 내리는 일도 없다. 장항준 영화는 허술함의 사랑스러움에 대한 영화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특히 나는 흥행에 실패한 ‘리바운드’(2023)를 매우 좋아한다. 최약체 고교 농구팀이 승리를 이어가는 실화를 다룬 영화다. 굳이 설명해야 할 만큼 본 사람이 없다. ‘슬램덩크’ 팬이라면 찾아보시기 바란다.

영화는 항상 격돌한다. 한국 영화가 잘 되던 시절에는 같은 시즌 많은 영화들이 동시 개봉했다. 영화는 부동산 과열 지구의 임대 상점 같은 데가 있다. 한 가게가 잘 되면 옆 가게도 잘된다. 물론 이건 사람들이 결정도 하지 않고 극장에 간 뒤 남은 티켓을 선택해 영화를 보던,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옛날 이야기다. 천만 시대를 연 두 영화를 기억하시는가 ?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는 비슷한 시기 각각 1108만, 1174만 관객을 끌어들였다. 한국 영화 경쟁의 시대가 시작됐다. 이전까지 한국 영화의 경쟁 상대는 할리우드 영화였다. 같은 시기 개봉도 서로 피하는 편이었다. 2004년 이후로 달라졌다. 산업이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자신감이 무르익은 2005년 곽경택 감독의 첩보물 ‘태풍’과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가 격돌했다. 피터 잭슨 감독의 ‘킹콩’도 있었지만 제외하도록 하자. 2005년은 왕의 남자와 북한 스파이의 대결이었다.

남북 액션첩보물 ‘휴민트’ 이젠 진부한 장르
‘휴민트’
그렇다. ‘왕과 사는 남자’와 ‘휴민트’ 이전에 이미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다.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태풍’은 401만, ‘왕의 남자’는 1174만명을 불러들였다. 매체들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다’고 썼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일단 ‘태풍’이 큰 실패작이었다. 재미가 없었다. 평범하지만 중요한 부분이다. 관객은 귀신 같이 재미있는 영화와 없는 영화를 골라낸다. 관객은 결국 알아챈다. ‘소비자가 왕이라는 소리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왕이다. 열기 전에는 품질을 보장할 수 없는데 가격은 같은 상품을 고르고 소비한다는 점에서 더 골치 아픈 왕이다. 영화는 가방과는 다르다. 미리 들어보고 구입할 수 없다. 나는 이런 산업에서 아직도 영화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이 있다. 살짝 떨어져서 보면 이런 도박판이 없다.

왕의 남자와 북한 스파이의 두 번째 격돌도 왕의 남자의 승리라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왕과 사는 남자’가 역대급 속도로 천만 영화를 향하고 있는 반면, ‘휴민트’는 현재 관객 수가 157만이다. 적어도 너무 적다. 누구도 이런 결과를 기대하지 않았다. 전체적인 관객 수가 지난 몇 년간 가파르게 추락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예전 관객들이 여러 편 영화를 선택했다면, 요즘 관객은 딱 한 편만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는 어쩌다 한 번 하는 사치스러운 외출이 됐다. OTT와 극장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집에서 볼 영화와 극장에서 볼 영화를 구분하기 시작한다. 굳이 극장까지 가서 봐야 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극장용 경험을 선사하는 유명 감독의 대작이거나 이미 모두가 보고 있어서 대화에 동참하고 싶다면 꼭 봐야 하는 화제작이어야 한다. 전자인 ‘휴민트’ 성공에 베팅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베팅은 어긋났다.

‘휴민트’는 지나칠 정도로 잘 만든 영화다. 잘 디자인 된 액션 장면들의 쾌감으로 보자면 류승완의 커리어에서 가장 돋보이는 영화 중 하나일 것이다. ‘왕과 사는 남자’는 지나칠 정도로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나는 검색을 하던 중 “배우들 캐릭터 표현이 신선한데 정작 연출이 쿰쿰한 느낌을 풍겨서 유감”이라는 비평을 봤다. 쿰쿰하다니 이런 무례한 표현이 어딨나. 혹시 올드하게 느껴진다는 이야기일까. 결국 묘하게 적절한 표현이었다. ‘왕과 사는 남자’는 옛 한국 영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데가 있다. ‘왕의 남자’를 비롯한 사극이 ‘웰메이드 사극’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공개되던 시절의 한국 영화 말이다. 나에게야 조금 옛날 영화지만 요즘 20대에게는 태어날 즈음 개봉한 고전이다. 올드하다.

아니다. 무엇이 더 올드한가. 그걸 한 번 생각해보자. ‘휴민트’는 올드할 수 없었던 영화다. 지금 한국에서 첩보와 액션이라는 장르를 할리우드에 가깝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은 류승완이 거의 유일하다. 류승완이라는 이름은 장르의 자신감이다. 어쩌면 그게 함정이었을 수도 있다. 첩보 액션 장르는 어느 순간 갑자기 지나치게 평준화됐다. 당장 넷플릭스를 틀어보시라. 첩보 액션 영화와 시리즈는 몰아보기를 해야 할 만큼 많다. 수많은 국가와 기관과 스파이들이 쏟아진다. 누군가는 배신하고 누군가는 죽을 것이다. 관객은 ‘휴민트’를 보기도 전에 이미 ‘휴민트’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남북 관계를 토대로 한 영화라는 서브 장르도 낡아버렸다. 김정은과 김주애가 ‘매트릭스’ 주인공처럼 맞춤 가죽 코트를 입고 나오는 시대다. 새로운 관객은 남북 관계에서 긴장감을 느끼지 못한다. 남북 관계성에서 스릴을 찾는 세대는 늙었다. X세대인 내가 마지막일 것이다. ‘휴민트’는 올드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만든 올드한 영화가 된 건지도 모른다.

‘왕과 사는 남자’
반면 ‘왕과 사는 남자’는 올드함을 버릴 생각이 없었다. 단종 이야기는 낡은 이야기다. 모두 그가 죽는다는 사실을 안다. 아니다. 단종 이야기는 낡은 이야기가 아니라 오래된 이야기다. 다시 찾아도 눈물 짓게 만드는 고전이다. 셰익스피어 비극과 같은 것이다. 단종(박지훈)이 누가 봐도 CG인 호랑이에 맞서 활 시위를 던질 때 많은 관객은 허술함에 웃었다. 나도 좀 웃었다. 단종이 죽을 때 관객은 CG 호랑이의 희극을 잊고 역사의 비극에 울었다. 나도 좀 울었다. 설 연휴 관객에게 이런 올드함은 더할 나위 없는 장점이다. 설 연휴에는 같이 보기 안전한 영화, 너무 세분화된 모두의 취향을 넘어서는 영화,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는 영화를 원한다. 지난 몇 년간 그런 영화는 거의 없었다.

20년전 ‘왕의 남자’ vs ‘태풍’ 때도 왕이 이겨
류승완 감독(왼쪽), 장항준 감독
하나는 선택 당했고 하나는 버려졌다. 나는 ‘버려졌다’는 표현을 쓰면서 고통을 느끼는 중이지만 그 표현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어쩌면 한국 영화는 ‘무엇이 새로운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던져야 할 때가 온 걸지도 모른다. 거대 블록버스터와 작은 영화 사이에서 중간 규모 영화는 거의 사라지고 있었다. 중간 규모 영화의 일을 OTT가 다 하고 있는 탓도 크다. 비디오·DVD 시장이 사라지자 중간 영화가 2차 시장에서 돈 벌 가능성도 사라졌다. 영화판은 더욱 도박판이 됐다. 제작비 60억원 이하 저예산이나 200억원 이상 초대형 영화만 남았다. 작게 보고 작게 먹거나 크게 보고 크게 먹는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이걸 ‘중간 예산 영화 괴멸(mid-budget collapse)’이라고 부른다. ‘왕과 사는 남자’는 중간 영화다. 제작비도 중간이고 웃음도 중간이고 눈물도 중간이고 대체로 다 중간이다. 중간은 편안하다. 중간에는 지나친 기대도 절망도 없다.

나는 ‘왕과 사는 남자’가 사라진 ‘중간 영화’의 부활이 되기를 바란다. 사실 오랫동안 사람들이 좋아한 영화는 대체로 다 중간이었다. 사람들이 항상 새롭고 거대한 것만을 바라는 건 아니다. 익히 아는 감동과 익히 아는 이야기만큼 모두를 골고루 만족시키는 건 잘 없다. ‘왕과 사는 남자’는 오랜만에 가족 단톡방에 등장한 중간 영화다. 비상 선언을 한 한국 영화가 중간에서 다시 답을 찾을 것인가. 그거야 누구도 모를 일이다. 어떤 답이든 제발 좀 찾아내길 바란다. 어쨌든 항상 결론은 같다. 결국 관객의 선택이 보여주는 미래에 답이 있을 것이다.

김도훈 영화평론가, 작가, 칼럼니스트. 영화 주간지 씨네21 기자, 온라인 미디어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을 지냈다.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 합시다』 『영화평도 리콜이 되나요 ?』 『낯선 사람』 『나의 충동구매 연대기』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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