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8일(현지시간) 이란을 전격적으로 공습하며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양국 간 악연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 시작은 70여 년 전인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1년 출범한 이란의 무함마드 모사데크 정권은 자국 석유 산업 국유화를 단행했다. 당시 이란 석유 산업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영국은 이에 즉각 반발하며 경제 제재에 나섰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 미국은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해 영국과 공조했고 1953년 이란 내 군부 쿠데타를 지원했다. 그 결과 모사데크는 축출됐고, 친서방 성향의 샤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가 복귀했다. 그러나 이같은 미국의 개입은 이란 사회 내 깊은 반미 정서를 남기게 된다.
팔라비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하며 급속한 서구화 정책을 추진했다. 미국의 지원으로 권력을 장악한 만큼 미국과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이었다. 1972년에는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이란 수도 테헤란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란은 미국산 무기의 주요 수입국으로 자리 잡았으며 1970년대 후반까지 F-14 전투기를 포함해 160억 달러(현재 환율로 약 23조)가 넘는 미국산 무기를 도입했다. 석유 관련 미국 기업들도 이란에 진출하는 등 양국 간 접점도 점차 확대됐다.
그러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팔라비가 축출되며 상황은 급변했다. 혁명을 주도한 루홀라 무사비 호메이니는 같은 해 2월 귀국해 권력을 장악했고, 두 달 뒤 국민투표를 거쳐 이란을 이슬람 공화국으로 선포한다. 이어 12월에는 호메이니를 최고지도자로 하는 헌법이 승인되며 반서방 성향 신정 체제로의 전환이 공식화됐다. 이 과정에서 이란과 미국의 지금과 같은 적대적 관계를 결정짓는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해 11월 4일, 이란 혁명 세력은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직원 90여 명을 인질로 잡았다. 사건의 발단은 미국이 축출된 팔라비에게 췌장암 치료를 이유로 미국 입국을 허가한 데 있었다. 혁명 세력은 여성과 흑인을 제외한 52명을 인질로 삼고, 미국에 팔라비의 즉각적인 인도를 요구했다.
1980년 4월 24일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은 특수부대를 투입해 인질 구조 작전에 나서지만 헬기 고장, 악천후로 승무원 8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당하면서 실패한다. 이듬해 1981년 1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인질들이 석방되며 테헤란 미 대사관 점거 사태는 444일 만에 종결된다.
이후 양국 관계는 완전히 단절됐고 ‘제재 → 군사적 긴장’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미국은 1984년 이란을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했고, 1987년에는 모든 이란산 제품 수입을 금지하고 대이란 수출 일부도 제한했다. 1995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이란이 테러를 지원하고 대량살상무기를 획득하려 한다는 이유로 이란과의 무역 및 금융 전면 금지령을 내렸다.
2005년 이란에서 강경 보수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핵 개발 우려가 커지자 제재는 강화됐다. 미국은 이란의 금융 부문과 석유 거래를 겨냥한 제재를 단행하며 돈줄을 옥좼다. 그러다 2015년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동결·축소하는 조건으로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대이란 제재를 해제하는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가 타결됐다.
하지만 2018년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미국은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이란을 다시 제재했다. 지난해 1월 재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해 6월 이란 핵 시설을 공습하는 등 공세 수위를 높였고 이러한 긴장은 결국 28일의 전면 공습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