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7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휴민트’는 국정원 공작관의 첩보 활동을 실감나게 조명한다. 공작관은 공작원을 포섭하고 조종해 정보를 얻는다. 누군가의 배신으로 조국에 충성한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지만, 정체를 감춘 채 산다. 삶 자체가 모순적인데, 실제 국정원 요원의 삶은 어떨까? 더중앙플러스 ‘VOICE:세상을 말하다’ 시리즈에서 30년 경력의 대북 공작관을 만났다. 자세한 내용은
더중앙플러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 전생에 무슨 큰 죄를 지었길래, 스파이 일을 해왔나 싶을 때가 있죠. 팔자가 드센 건가···. "
30년 경력의 베테랑 대북 공작관 정일천(62) 전 요원은 지난 활동을 돌이켜보며 이런 말을 꺼냈다. 정 전 공작관은 국가정보원에서 2021년 1급(관리관)으로 퇴직했다. 4년간 대북 정보 분석을 맡았고, 이후 25년간 대북 공작 활동을 수행했다. 쉽게 말해 북한 정보를 빼오는 공작원을 심었다. 장사꾼부터 고위급 외교관까지, 공작원을 포섭하고 조종했다.
정 전 공작관은 인터뷰에서 이중 스파이, 미남계, 중간 공작원을 활용한 연계 공작 등 공작의 여러 유형을 상세히 전했다. 공작을 위한 셀 수 없는 해외 출장에서 적국 감시를 피하기 위해 어떤 위장을 했는지, 북한 고위급 인사와 접선할 때 긴장과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도 설명했다. 7명의 대통령을 거친 1급 공무원이자 대북 스파이인 그는 어떻게 30년을 버텼을까. 자신을 ‘돈 받고 일하는 프로’라고 말한 그는 “공작에서 방심은 곧 죽음”이라고 단언했다.
Q : 공작을 위한 해외 출장을 얼마나 자주 다녔나.
많이 갈 땐 한 달에 두 번 갔다. 짧게는 5일, 길게는 보름 정도 머문다. 두 번 나가면 한 달 내내 스트레스였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가 뜨는 순간 긴장이 엄습한다. 공작관은 신분이 보장된 외교관(국정원 백색 요원)으로 해외를 가는 게 아니다. 신분을 위장한다. 지금은 금연을 하지만, 현직 땐 현지 공항에 도착하면 담배부터 피우고 주변을 살폈다.
공항 앞에 줄 지어선 택시는 바로 타지 않았다. 현지 방첩 기관이 심어둔 택시일 수도 있다. 호텔에서 사람을 만나러 나갈 때도 로비에 대기 중인 택시는 가급적 안 탄다. 일부러 뒤 차를 타거나 2~3분 걸어나가서 택시를 잡았다. 객실 도청 확인은 필수고, 동료와 대화할 땐 TV 볼륨을 크게 키웠다.
Q : 또 어떤 위장이 필요했나.
대부분 출장 목적은 공작원 접선이다. (공작원을) 몰래 만나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 지시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가장(假裝) 활동이 꼭 필요하다. 사업가로 위장할 땐 현지 짝퉁 시장을 꼭 갔다. 어떤 상점 점원은 내 얼굴을 익혔는지, 알아보고 인사도 했다. “깍쟁이 아저씨 또 왔다”고.
Q : 공작 활동 중 위험했던 적은.
한 번 있었다.
정 전 공작관은 25년간 해외 출장을 다니며 ‘싸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딱 한 번, 숨통이 조여오는 공포를 느낀 순간이 있었다. 2000년대 중반이었다. 제3국 출장을 마치고 귀국 비행기를 타려고 현지 공항에 도착했다. 담배를 피우러 한적한 흡연 부스에 들어섰는데, 현지인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따라 들어와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 남자가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어요. 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느낌이…. 계속 쳐다보니까, 저는 그 사람 눈을 피했죠. 속으론 ‘이게 뭐지?’ ‘얘 뭐지?’ ‘방첩기관 요원인가?’ 생각하고 다시 그 사람을 쳐다봤는데, 여전히 저를 보고 있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