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섭의 식판]이란 이름으로 우리 주변의 사라지면 안 될 식당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바로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식당의 미덕은 맛있고, 가격이 합리적이고, 친절하고, 깔끔한 것이어야겠죠. 물론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식당은 점점 찾기 어려워지고 있지만, 그 드문 유니콘을 찾아 오늘도 도시의 골목을 헤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중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기록을 남겨 봅니다.
참, ‘식판’이란 말은 학교나 군대, 구내식당의 식판처럼 먹을 것을 쌓아놓는 판이라고 읽어도 좋지만, 굳이 거기에 의미를 추가하자면 식판(食判), 먹을 것(食)을 판단한다(判)는 뜻입니다. 그럼 첫 식당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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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뼈해장국이 먹고 싶어져서
전날 술을 먹었든 안 먹었든, 그냥 뼈해장국을 먹으러 갑니다. 본래 조선시대 기록에 남은 뼈해장국은 소뼈로 만든 사골에 우거지를 넣은 국, 요즘 식으로 하면 우거지 갈비탕에 가깝습니다만, 요즘 사람들이 떠올리는 뼈해장국은 누가 뭐래도 돼지 등뼈로 우린 국이죠. 감자가 들어가면 자동으로 감자탕이 됩니다. 부디 ‘돼지 등뼈의 별칭이 감자뼈라서 감자탕’이라는 근본 없는 말은 잊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뼈 이름은 대한민국 도축계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국 방방 곡곡, 뼈해장국 또는 감자탕집이 없는 동네는 없고, 당연히 동네 마다 맛집이 있습니다. 서울만 해도 현존하는 감자탕집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돈암동 태조감자국(1958년 개업), 24시간 줄을 서는 성수동 소문난 성수감자탕, 역시 서울 도심의 이름 높은 노포인 을지로 동원집, 은평구 감자탕 거리를 거느린 지역 맹주 서부감자탕 등등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즐비합니다.
서울 마포구에도 이런 이름들에 뒤지지 않는 뼈해장국 마니아들의 성지가 있습니다. 서울 중심부에서 약간 서쪽으로 치우쳐 있기는 하지만, 적잖이 입소문이 나 있어 멀리서 원정 온 손님들까지 줄서기에 참전하는 망원동 일등식당입니다.
맛집 탐험을 좀 해 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 중에, ‘왠지 간판을 보니 맛있을 것 같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식당도 밖에 줄을 서서 식당 안을 들여다 보면, 신경을 쓴 듯 안 쓴 듯한 간판, 10개 안팎의 테이블 마다 놓여 있는 스테인리스제 뼈 버리는 쟁반까지 뭔가 그럴듯한 느낌이 드는데, 벽에 붙어있는 가격에서 살짝 전율이 일어납니다. 해장국 8천원, 특 1만1천원.
요즘 분식집 김밥이 5천원, 오무라이스가 9천원 하는 세상에서 8천 원짜리 뼈해장국을 영접하는 기쁨이란. 그렇다고 유명한 몇몇 곰탕집들처럼 기본은 아동용이고 최소 특은 시켜야 어른 식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뚝배기 가득 찬 뼈와 우거지를 보면 감동은 두배. 뼛대에도 제법 살점이 붙어 있습니다.
우거지를 적당히 가위로 잘라 국물에 적셔 입에 넣어 보면, 그제사 ‘우거지 추가 3000원’이라는 벽보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 우거지 맛집이구나. 우거지를 다시 국물에 적시고, 뼈에서 발라낸 살코기와 함께 먹어 봅니다. 국물이 밥을 부르고, 다음 숟가락을 뜨기 전에 벌써 입안 가득 침이 고이고, 이는 씹기 시작하고, 동행인 사이에 대화가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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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해장국 국물이 깔끔한 맛이라니.
흔히 뼈해장국이라면 돼지 뼈의 콜라겐과 들깻가루, 고추기름이 적절히 녹아든, 걸쭉한 국물을 연상하게 되지만 일등식당의 국물은 진한 맛이면서도 깔끔한 느낌을 주는게 특징입니다. 비결을 물으니 주인집 아드님은 허허 웃으며 “그런건 어머니가 저한테도 안 가르쳐 주시네요”라고 받아칩니다.
일등식당은 1986년 개업한 뒤 지금의 사장님이 세번째 주인입니다. 두번 주인이 바뀌었는데도 기술이전에 문제가 없었는지 단골이 끊이지 않습니다. 비결을 물으니 ‘비결이 없다’는 대답. 돼지 등뼈는 캐나다 산을 쓰다가 덴마크 산을 쓰고, 우거지도 거래선을 가끔씩 바꿔서 좋은 것을 골라 씁니다. 국내산 등뼈를 쓰지 않는 것도 이유가 있더군요. “우리나라 도축하시는 분들이 기술이 너무 좋아서, 등뼈에 고기가 별로 안 남아 있거든요. 아무래도 우리 손님들은 고기 살밥이 푸짐한 걸 더 좋아하시니까, 수입산을 쓰게 되더라구요.”
이쯤 되면 대단한 비밀 재료를 쓰는게 아닌가 했던 기대가 사그라듭니다. 그럼 어떻게 만드는 걸까요. 일단 아드님이 새벽에 나와 등뼈를 삶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3~4시간이 골든 타임. 그렇게 해서 진한 육수를 졸여 농축액을 만들고, 이걸 어머니(사장님)가 우거지 등 채소 삶은 물, 갖은 양념과 합쳐 본 국물을 만듭니다. 이 국물에 고기를 담가 손님 상에 나가는 해장국을 만들죠. 신선한 재료를 남지 않게 자주 새로 끓여주는 것, 그리고 육수 농축액과 채수의 배합 비율이 비결이라면 비결인 셈입니다.
아무튼 다시 가격.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당분간’은 가격 인상 계획이 없다고 합니다. “싸게 많이 파는게 좋죠. 손님들도 다들 물가가 너무 올라서 어렵다고 하시는데.”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