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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 반서방' 하메네이 사망…36년 철권통치 막 내렸다

중앙일보

2026.02.28 17:48 2026.02.2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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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미국의 공습으로 지난 28일(현지시간) 사망했다. 87세. 36년간 이란을 철권 통치하며 반(反)미·반서방 노선을 일관되게 걸어온 인물의 퇴장이다.

하메네이는 1939년 이란 동북부 마슈하드의 성직자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이슬람 시아파 신학을 공부했다. 아랍·페르시아 문학에 조예가 깊었다. 혁명 전까지 성직자이자 번역가, 시인으로 활동했다. 팔레비 왕조 시절 반정부 활동으로 여러 차례 투옥되며 반미·반왕정 투쟁의 길로 들어섰다.

지난해 9월 방송 연설에서의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모습. 이란 국영방송은 28일(현지시간) 그의 사망을 공식 확인했다. 로이터=연합뉴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정치적 입지가 상승했다. 혁명 지도자 호메이니의 신임을 바탕으로 혁명평의회와 이슬람공화당에서 활동했다. 1981년 폭탄 테러로 오른팔을 크게 다친 뒤 같은 해 대통령에 선출됐다. 대통령 재임(1981~1989년) 기간 이란-이라크 전쟁을 치렀다. 이 때부터 카리스마 있는 강경파 지도자로서 존재감을 키웠다.


하메네이는 1989년 호메이니가 사망하자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이후 헌법을 개정해 최고지도자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대통령, 의회, 사법부 위에 군림하며 혁명수비대(IRGC), 정보기관, 국영 언론을 통제하는 ‘신정(神政) 체제’를 구축했다.

1981년 10월 군복을 입고 서 있는 하메네이. AP=연합뉴스

그의 통치 핵심은 ‘저항의 축(Axis of Resistance)’으로 불리는 반미·반이스라엘 노선이었다. 하메네이는 미국을 “이란 혁명의 영원한 적”으로 규정했다.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정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레바논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시리아 아사드 정권, 예멘 후티 반군 등에 대한 지원은 그의 중동 전략을 상징한다.


2015년 핵합의(JCPOA)는 전술적 타협에 불과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 탈퇴 이후 그는 다시 강경 노선으로 회귀했다. 하메네이는 “미국과 협상은 독”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오직 체제 생존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


국내에선 반복되는 개혁 요구와 대규모 시위를 강경 진압하며 철권 통치를 이어갔다. 2009년 대선 부정 논란 이후 ‘녹색운동’, 2019년 유가 인상 시위, 2022년 ‘히잡 시위’, 지난해 12월 불붙어 최근까지 이어진 반정부 시위까지. 그의 선택은 대화보다 억압이었다. 국제사회는 인권 탄압을 이유로 제재를 강화했고, 이란은 더 고립됐다.


28일 백악관 공식 X 계정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린 하메네이 사망 소식을 공유했다. AFP=연합뉴스

하메네이 사후 이란·중동 정세는 중대한 변곡점을 맞을 전망이다. 하메네이는 자신이 숨질 경우를 대비해 공개하지 않은 3명의 후보를 후계자로 낙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기적으로 최고지도자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체제 안정이 최우선 과제다.


전문가들은 혁명수비대와 보수 성직자 네트워크가 후계 구도를 관리하며 급격한 노선 변화를 자제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차기 최고지도자의 종교적 권위와 정치적 정당성이 하메네이만큼 강력하지 않을 경우 내부 권력 균열과 민심 이반이 가속화할 수 있다.

한편 이번 공습으로 하메네이의 딸·사위·손녀 등 가족 4명이 사망했다고 이란 국영 매체가 보도했다.




김기환([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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